김표향 기자

등록 : 2018.05.20 13:54
수정 : 2018.05.20 18:43

여성으로 시작해 여성으로 끝난 칸… 최고평점 ‘버닝’은 수상 불발 이변

제71회 칸국제영화제 폐막

등록 : 2018.05.20 13:54
수정 : 2018.05.20 18:43

심사위원 과반이 여성으로 구성

황금종려상 日 ‘만비키 가족’ 등

여성의 현실 다룬 작품 꼽히며

성평등 운동에 대한 지지 표현

언론ㆍ평론가 극찬 받은 버닝은

국제비평가연맹상 수상으로

세계 무대서 예술적 성취 인정

신점희 미술감독은 ‘벌컨상’

영화 ‘만비키 가족’으로 제71회 칸국제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일본 고레에다 히로카즈(오른쪽) 감독이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인 배우 케이트 블란쳇의 박수를 받으며 트로피를 들어 보이고 있다. 칸=로이터 연합뉴스

제71회 칸국제영화제(칸영화제)는 여성으로 시작해 여성으로 끝났다. 19일(현지시간) 프랑스 남부도시 칸의 뤼미에르 극장에서 열린 폐막식에서 경쟁부문에 초청된 여성감독 3명 중 2명이 수상했고 다양한 주제 안에 여성의 현실을 녹여 낸 영화들이 주목 받았다. ‘미투(#Me Too)’ 운동으로 촉발된 성평등 요구에 칸영화제는 수상 결과로 응답했다.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은 일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만비키 가족’에게 돌아갔다.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은, 무난하고 안정적인 선택이었다는 평가다. 다만, 전 세계 언론과 평론가들로부터 극찬을 받았던 ‘버닝’과 이창동 감독의 수상 실패는 올해 칸영화제 최대 이변으로 꼽힌다.

19일(현지시간) 열린 제71회 칸국제영화제 폐막식에 참석한 경쟁부문 심사위원들이 레드카펫에서 인사하고 있다. 칸=EPA 연합뉴스

여성 문제에 응답한 칸

고레에다 감독은 칸영화제가 지지하고 사랑하는 감독이다. ‘만비키 가족’까지 경쟁부문에서 5번 초청장을 받았다. 2004년 ‘아무도 모른다’로 당시 14세였던 배우 야기라 유야에게 최우수남자배우상을 안기고, 2013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로 심사위원상을 받은 데 이어 마침내 최고 영예까지 품었다. ‘만비키 가족’은 할머니의 연금과 좀도둑질로 살아가는 가족이 혼자 남겨진 다섯 살 소녀를 가족으로 맞이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심사위원대상은 백인우월주의집단 KKK단에 잠입한 흑인 형사의 실화를 그린 미국 스파이크 리 감독의 ‘블랙클랜스맨’이 수상했고, 심사위원상은 레바논 난민의 현실을 조명한 여성 감독 나딘 라바키의 ‘가버나움’이 받았다. 감독상은 1950년 냉전시대를 배경으로 이뤄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를 그린 폴란드 영화 ‘콜드 워’의 파베우 파블리코브스키 감독에게 주어졌다. 동아시아는 물론 중동과 동유럽에 이르기까지 지역별 안배와 균형이 엿보인다.

중심 화두는 역시 여성이다. 심사위원장인 배우 케이트 블란쳇을 비롯해 경쟁부문 심사위원 9명 중 5명이 여성으로 구성됐을 때부터 예상됐던 일이다. 가정과 사회에서 여성이 처한 현실을 다룬 작품들이 심사위원의 마음을 강하게 움직였다.

카자흐스탄 출신 세르게이 드보르체보이 감독의 ‘아이카’는 직업도 집도 없는 여성이 아이를 출산하면서 겪는 사건을 그린 작품으로, 주연배우 사말 예슬야모바가 최우수여자배우상에 호명됐다. 각본상을 받은 이란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쓰리 페이시스’는 남성 중심 전통이 지배하는 이란에서 꿈과 자유를 억압당한 여성의 삶을 들여다본다. 경쟁부문 여성감독 3명 중 2명도 주요상을 가져갔다. 레바논에서 배우로도 활동 중인 나딘 라바키 감독의 ‘가버나움’이 심사위원상을 받았고, 이탈리아 알리체 로르바케르 감독의 ‘라자로 펠리체’가 ‘쓰리 페이시스’와 함께 각본상을 차지했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황금종려상을 받은 ‘만비키 가족’에도 부모에게 버려진 소녀와 성매매로 살아가는 여성,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남편을 죽인 여성 등 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폭력을 묘사하려는 노력이 담겼다”며 “올해 칸영화제는 시작부터 끝까지 여성을 화두로 견지하고 수상 결과를 통해 여성에 대한 지지와 연대의 메시지를 명확히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제71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 ‘버닝’의 이준동(왼쪽부터) 파인하우스필름 대표와 배우 스티븐 연, 전종서, 유아인, 이창동 감독이 16일(현지시간) 공식 상영에 앞서 열린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해 사진촬영에 응하고 있다. 칸=EPA 연합뉴스

‘버닝’ 수상 불발 이변

‘버닝’이 수상 명단에 들지 못한 건 두고두고 아쉽다. 올해 칸영화제 최대 이변으로 꼽힐 뿐 아니라 논란도 예상된다. 계급주의 사회에서 청년들이 겪는 좌절과 분노를 그린 ‘버닝’은 칸영화제 공식 일일 소식지 스크린 데일리에서 4점 만점에 3.8점을 얻으며 역대 최고 평점을 기록했다. “깊이와 통찰력을 지닌 아름다운 걸작”(미국 연예전문지 할리우드 리포터), “촘촘한 미스터리로 가득찬 영화”(미국 연예전문지 버라이어티), “아름다운 빛과 긴장감 넘치는 심리의 완벽한 표현”(미국 일간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등 전 세계 주요 언론에서 호평이 쏟아졌다. 어느 때보다 수상 분위기가 무르익었던 터라, 칸 현지에선 ‘버닝’의 수상 불발을 의아하게 보는 시선이 적지 않다. 영국 일간 가디언의 영화평론가 피터 브래드쇼는 “심사위원들이 ‘버닝’에 어떠한 상도 주지 않은 것은 매우 실망스럽다”고도 썼다.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2016년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국 켄 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처럼 최근 칸영화제는 현대인의 고통스러운 삶을 보다 쉽고 구체적으로 서술한 작품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며 “여러 상징과 은유에 대한 해석이 필요한 ‘버닝’이 다소 불친절하게 느껴졌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칸영화제의 정치적 고려에서 순서가 밀린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정부가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해 영화계 주요 인사들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로 억압하면서 세계 무대에서 한국 영화의 위상이 많이 흔들렸다. 한국 영화를 소개해 온 칸영화제 자문위원 피에르 르시앙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세계 영화계와의 소통도 힘을 얻지 못했다.

본상은 받지 못했지만 ‘버닝’의 예술적 성취는 높이 평가받았다. ‘버닝’은 폐막식에 앞서 국제비평가연맹이 주최하는 국제비평가연맹상을 수상했다. 전 세계 평론가로부터 경쟁부문 초청작 21편 중 최고의 작품으로 뽑혔다. 신점희 미술감독은 촬영ㆍ미술ㆍ의상 등 기술부문 스태프에게 주어지는 번외 특별상인 벌컨상을 수상하며 본상 실패의 아쉬움을 달랬다. 국내 스태프의 벌컨상 수상은 2016년 ‘아가씨’의 류성희 미술감독 이후 두 번째다.

칸=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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