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기획사 사장, 중견기업인 등 출입… 10억대 판돈 소문도"
한국 검·경 원정도박 수사 소문에
한인 고객들 뜸해지고 중국인만
최대 베팅한도 30만~80만 달러
손님들에 덤터기 교묘한 상술도
누구나 쉽게 드나들 수 있어 정킷방 하나만 차리면 노다지
"1년 수입 100억 거뜬" 說 파다
“요즘 한국인이 거의 없다. ‘큰 손’이 와도 죄다 중국인이 관리하는 정킷방에 숨어 게임을 한다.”
23일(현지시간) 오후 기자는 마카오 타이파 섬에 위치한 씨티오브드림(크라운-하야트-하드록 호텔의 통칭) 정킷방을 찾았다. 정킷방은 도박업자가 카지노업체에서 거액을 주고 임대한 게임방으로 사설도박장에 가깝다. 출입이 까다롭다는 소문과 달리 누구나 쉽게 드나들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검ㆍ경이 원정도박 수사에 나섰다는 소문이 돌면서 현지의 모습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마카오 생활 8년째인 한인 에이전트 김모(38)씨는 “금요일 밤이면 피크 타임의 시작이어야 하는데 테이블이 텅텅 비었다”고 하소연했다. 실제 두 개의 큰 방으로 나뉜 A호텔 정킷방에는 10여개의 바카라 테이블이 있었지만 중국인 손님 4,5개 팀이 게임을 하고 있을 뿐 한산했다. 한국인들이 소문나기 쉬운 한인보다 현지인 에이전트를 쓰는 것도 한 이유였다. 김씨는 “공항에라도 가서 관광객을 모셔오기도 하는데 요즘에는 그마저 어렵다”며 “‘앵벌이’들만 자꾸 들락거린다”고 했다. 앵벌이란 도박으로 돈을 잃고 노숙 생활을 하는 현지 한인들을 말한다. 그의 말처럼 다음날 새벽까지 이 방에는 한인 ‘앵벌이’ 4,5명이 찾아와 중국 손님들의 게임을 구경하며 콜라와 커피를 주문해 마셨다. 9년째 앵벌이로 버티고 있다는 김모(51)씨는 “마카오 정킷방은 누구에게나 음료수를 무제한 공짜로 제공한다”며 “한국 언론에 나오는 것처럼 대단한 곳이 아닌 편안한 쉼터”라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머무는 손님들이 잠재적 고객이 될 수 있는 까닭에 카지노 측도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는다.
토요일인 24일에도 한국인 고객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갤럭시 엠지엠 알트라 호텔 등 평소 한인이 많이 몰리는 호텔의 정킷방을 찾았지만 밤새 한국인이 차지한 테이블은 3개뿐이었다. 그마저 비교적 소액인 5,000~1만 홍콩달러의 베팅으로 바카라 게임이 진행됐다. 승부가 결정 나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30초. 딜러의 손에서 카드가 펼쳐질 때마다 탄식과 환호가 교차했다. 바카라는 뱅커와 플레이어라는 가상 인물을 정해 놓고 이 중 누가 승부에서 이길지 예측해 판돈을 거는 게임이다. 회전율이 빠르고 그 만큼 쉽게 돈을 딸 수 있어 한국인들이 선호한다고 현지인들은 전했다. 이날 밤 11시30분 게임을 시작한 한 한국인 관광객은 한 시간도 안돼 8만 달러를 잃고 자리를 떴다. 정킷방 관리자인 한인 장모(47)씨는 “롤링비(수수료)를 벌려면 손님과 딜러가 팽팽하게 게임하며 판돈이 돌고 돌아야 하는데, 이렇게 일찍 끝나면 남는 것도 없다”며 “한국인이 많았던 얼마 전만 해도 정킷방 하나만 잘 잡아도 1년에 100억원은 거뜬히 벌었다”고 전했다.
현지 교민들에 따르면 현재 한국인을 상대로 하는 카지노업계는 ‘약육강식’ 세계를 방불케 한다. 교민 B씨는 “정킷방 관리자가 손님에게 말하지 않고 더블게임(칩의 2배로 정산하는 도박)을 진행한 뒤 20억원을 덤터기 씌우기도 하고, 손님이 관리자한테 빌린 10억원을 갚지 않아 부산의 한 경찰서에 고소를 넣었다가 지인 중재로 취하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B씨는 “한국인들은 잠시 돈을 따도 결국은 다시 도박으로 더 많은 돈을 잃고 돌아간다”고 덧붙였다.
정킷방에는 교묘한 상술도 숨어 있다. 정킷방의 최대 베팅 한도는 30만~80만달러. 퍼블릭 게임장의 100만달러보다 훨씬 적은 액수다. 장씨는 “베팅 한도를 적게 해놔야 손님이 무리하지 않고, 그래야 돈이 더 많이 돌아 롤링비가 늘어난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현지에서는 마카오 카지노를 찾은 한국의 유명인사들에 대한 소문이 파다했다. 장씨는 “몇 년 전 마카오에서 콘서트를 마친 인기가수가 1억~2억원의 판돈으로 바카라를 했고, 한 유명 연예기획사 사장은 2년 전 홍콩에서 헬기를 타고 마카오로 넘어와 10억원대 도박판을 벌였다는 소문이 났다”고 했다. 그는 또 “한국에 마카오 관광인프라를 알렸다는 이유로 2007년 마카오 정부로부터 특별 공로상을 받은 유명 중견기업인이 지난 3년 간 바카라에 쏟은 돈이 내가 목격한 것만 10억원 이상”이라고 전했다.
현지 환전업자는 “나도 카지노 사업에 빌붙어 먹고 살지만 마카오는 마약보다 무서운 곳”이라며 “1층 퍼블릭 게임장에서 몇 백만원을 두고 게임을 하는 것은 오락일지 몰라도 정킷방에 올라와 하룻밤에 1억~2억원을 쓰는 것은 누가 봐도 도박”이라고 말했다.
마카오=박주희기자 jxp93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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