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저금리 기조 속 고수익 유혹
2. 소외 당하던 개미들, 증시서 이동
3. 부동산과 달리 적은 돈도 투자 가능
4. IT세대, 가상화폐 미래 기술로 확신
5. PC방은 손님 안 받고 채굴도
정부 규제에도 가상화폐 광풍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 가상화폐에 대한 관심은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서 그 정도가 심하다. 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상화폐 투자자는 이미 300만명을 넘은 것으로 추산된다. 우리나라의 젊은 층이 가상화폐 투자에 열광하게 된 경제적 관점에서의 이유를 전문가 분석을 토대로 정리해 본다.
1.풍부한 유동성, 고수익의 유혹
직장인 조모(38)씨는 14일 “저축은행에 정기적금을 넣고 각종 우대금리를 받아도 4% 수준에 그쳤는데 비트코인은 하루에 10% 이상 수익을 내니 굳이 돈을 묶어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며 “최근 하락장이 이어지고 있지만 어차피 적금을 들었다는 마음으로 올해 말까지 ‘존버’(팔지 않고 버틴다는 속어)하면 적금보다 훨씬 높은 수익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가상화폐 광풍의 가장 큰 이유는 풍부한 유동성과 저금리 환경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늘어난 시중 여유자금이 저금리 기조 속에 적절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고위험ㆍ고수익 상품인 가상화폐 시장으로 쏠리고 있다. 지난해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이후 시중 금융기관의 예ㆍ적금 금리가 오름세를 보이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은행 정기예금(1년 만기) 평균 금리는 1.79%에 그칠 정도로 낮은 수준이다.
반면 14일 글로벌 가상화폐 정보업체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전 세계 가상화폐 시가총액은 7,154억달러에 달한다. 1년 전(2017년 1월14일ㆍ157억달러)보다 45배 이상 커졌다. 한호현 경희대 교수는 “시중에 돈은 많은데 갈 곳은 없는 상황에서 단기간에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기대감이 사람들을 가상화폐 판으로 끌어들이고 있다”며 “유입된 자금이 잘 빠져나가지 않는 것은 ‘아직 더 오를 것’이란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주식시장에서 소외당한 개미
대기업에 다니는 송모(45)씨는 지난달 주식에서 빼낸 자금 4,000만원을 비트코인을 포함한 5종류의 가상화폐에 넣었다. 지난해 코스피 활황에 수익을 내긴 했지만 그간 공매도(주가 하락을 예상하고 주식을 빌려 판 뒤 나중에 되사 갚는 투자)로 마음 고생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송씨는 “정보가 부족한 개미는 공매도의 먹잇감이 되기 쉬운 주식 시장에 비해 가상화폐 시장은 상대적으로 공정하게 여겨진다”고 말했다.
송씨처럼 증시의 정보 불균형에 염증을 느낀 개인 투자자도 가상화폐 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증시는 정보를 독점하는 증권사나 기관투자자와 달리 개인에겐 ‘기울어진 운동장’일 수 밖에 없다. 가상화폐 시장에서도 ‘고래’(큰 손을 지칭하는 단어)에 휘둘릴 수는 있지만 적어도 공매도로 피해를 볼 일은 없다.
3.부동산 대비 소액 투자 가능
지난해 서울 강남권 아파트(전용면적 84㎡ 기준)는 2억~5억원 올랐다. 서울 주요 지역에선 이제 10억원을 밑도는 아파트를 찾기도 쉽지 않다. 은행 대출을 받는 것도 더 까다로워지면서 목돈이 없는 이들은 아파트 투자가 불가능해진 상황이다. 반면 가상화폐 투자는 단 돈 몇 십 만원으로도 투자를 할 수 있다. 홍기훈 홍익대 교수는 “가상화폐 거래는 부동산과 달리 적은 돈으로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데다 애플리케이션(앱)만 깔면 돼 접근도 용이하다”며 ”젊은층은 돈을 빨리 벌 수 있는 수단으로 여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4.‘게임 머니’와 미래 기술 선호
공기업에 근무하는 남모(29ㆍ여)씨는 최근 적금을 깨고 알트(대안)코인인 리플에 1,000만원을 넣었다. 미국 최대 송금업체인 머니그램이 리플과 제휴를 맺고 이를 활용한 자금결제 서비스를 실시하기로 했다는 소식에 투자를 결심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선 규제해도 세계적으로 가상화폐 기술이 확산되는 추세인 만큼 장기적으론 가치가 오를 것”이라며 “가상화폐의 본질에 대해 알고 싶어 관련 서적도 구매했다”고 말했다.
남씨처럼 우리 사회의 30세를 전후로 한 세대는 어릴 때부터 ‘인터넷 게임’을 즐겨 ‘게임 머니 거래’ 등에 익숙하다. 기성세대와 달리 아무런 거부감 없이 가상화폐를 새로운 시대의 기술로 받아들여 투자도 게임처럼 하게 됐다는 분석이다. 김진화 한국블록체인협회 공동대표는 “386세대에게 인터넷 혁명의 바람이 불었듯 현 젊은 세대는 가상화폐를 미래에 투자하는 기술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비트코인 거품(버블)이 확 꺼질 것’이란 정부의 비판에도 가상화폐 시장이 성장하는 것도 미래 기술에 대한 믿음과 무관치 않다.
5.PC방과 정보기술(IT) 인프라
국내의 발달한 IT 환경도 가상화폐 시장 급성장의 한 배경이 됐다. 이병태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는 “최근엔 컴퓨터가 많고 고속 네트워크가 깔려있다는 특성을 살려 손님을 받지 않고 이더리움 등을 채굴하는 PC방도 많다”며 “채굴이 많으니 거래도 많고 현금화하는 사람도 많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신산업이 시작될 땐 대규모 자본이 필요하고 버블은 필연적”이라며 “닷컴 버블이 없었다면 현재의 페이스북, 아마존 같은 기업은 생기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버블과 기술발전을 마치 분리할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 하는 것은 패러다임이 바뀔 때 오는 현상에 대한 인식의 부족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강아름 기자 sara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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