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선명 좌파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제러미 코빈 노동당 신임대표의 인기몰이가 뜨겁다. 영국 언론들은 연일‘코빈 컬트(숭배)’등의 제목으로 코빈 신드롬에 대한 분석과 전망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달 29일 노동당의 노선과 정책 방향을 논의하는 컨퍼런스에서 가진 그의 첫 연설도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 “불평등과 부당함은 필연적인 것이 아니다”라며 당당하게 맞서자고 호소했다. 정치인의 화법은 직설적이고 솔직해야 한다는 소신대로 선명한 발언은 거침이 없었다.
▦ 그런데 이날 영국 언론들이 주목한 대목은 그의 주요 정책이 아니라 “보다 친절한 정치(a kinder politics)”란 약속이었다. 그는 분명하게 친절한 정치를 정의하지 않았지만 인격모독, 사이버폭력, 근거 없는 폭로 등의 종식, 듣는 리더십 등을 언급한 것에 비춰 품격 있는 정치, 함께 하는 정치, 무례하지 않은 정치 스타일을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정책은 보다 친절해야 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배려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한 점에서는 국민들을 상대로 한 친절한 정책 서비스 차원까지로 확장되는 것 같다.
▦ 영국 일간 가디언은 기존 정치권이 외면한 생활 밀착형 문제들에 우직하게 천착해온 코빈 대표의 일관된 언행이 대중에게‘친절한 정치’로 비치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1일자 아침신문 국제면에서 코빈 대표의‘친절한 정치’기사가 눈에 확 들어온 건 전혀 친절하지 않은 우리 정치에 대한 반작용이었을 테다. 목하 여당과 청와대 간에 벌어지고 있는 공천권 다툼은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는 무례의 극치다. 친박과 비박 간의 권력 싸움엔 공존과 배려, 품격, 금도 같은 친절한 정치가 자리할 틈이 없다.
▦ 그런 점에서는 야당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제1 야당의 지리멸렬을 걱정하는 국민과 지지자들의 불편한 마음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자신과 계파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어떠한 추태도 마다하지 않는다. 통합과 단합을 외치지만 현실에서는 배제의 정치, 악다구니 정치만 횡행할 뿐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에 거는 국민들의 기대가 바닥 난지는 이미 오래다. 무능한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쳐도 최소한 국민을 존중하고 친절하기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코빈의 친절한 정치를 직구라도 해야 할까.
이계성 수석논설위원 wk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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