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면 ‘맛있다’ 라는 쾌감과 동시에 ‘이토록 맛있는 음식이 줄어들고 있다’는 슬픔이 한꺼번에 몰려올 때가 있다. 고백하자면, 요즘 드라마 ‘도깨비(tvN)’를 볼 때마다 그런 느낌이 든다. 드라마를 ‘본방사수’ 하는 1시간 여 동안 ‘너무 재미있다’는 환희와 ‘아, 벌써 16회(마지막 회)까지 한 회분이 또 줄어들어 버렸다니’ 라는 생각이 동시에 몰려든다.
어떤 요리 경연 프로그램에서 누군가 이런 식의 심사평을 한 걸 들은 적이 있다. “육수와 소스의 맛을 정성스럽게 겹겹이 만들어 놓아서, 한 가지 맛을 보는 순간 다른 맛들이 층층이 기다리고 있다”는 식의 평가다.
‘도깨비’가 딱 그렇다. 주인공 커플인 도깨비 김신(공유)-도깨비 신부 지은탁(김고은)의 스토리도 애절하지만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 인물들의 톡톡 튀는 매력과 사연들이 대단하고, 또 몇겹씩 정성스레 설계해서 만들어 놓은 듯한 미스터리를 한 개씩 벗겨서 풀어가는 재미가 있다. 드라마를 보는 동안 여기저기서 매력이 펑펑 터져 나와 정신이 없다.
이를 테면 지난 토요일 밤 10회의 내용을 보자. 이날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도깨비’ 관련 기사 중에는 공유와 김고은의 포장마차 키스씬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물론 설레고 신선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공유의 전생 회상씬-- 동생 김선(김소현)이 시집가던 날, 가마 안팎에서 나눈 오누이의 대화 장면에서 그만 펑펑 울고 말았다. 무뚝뚝한 표정으로 “못 생겼다”고 대꾸하는 오라비 공유에게서 권력의 전쟁터인 구중궁궐로 동생을 시집 보내는 게 마뜩치 않으면서도 내색하지 못하는 사랑이 느껴져서다. 그리고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배우 김소현이 너무 예뻐서 그만.
그러다가 이후에 다시 극중의 1월 1일 아침 씬으로 넘어가서는 배를 잡고 웃었다. 떡국에 넣을 대파를 사 들고 오는 공유-이동욱의 투샷(2회에 등장했던 어둠 속 조명 받고 슬로 모션으로 모델처럼 걸어 오는. 이 부분에서 비닐에 담긴 대파의 실루엣이 추가된 게 웃음 포인트)에 이어 “인도로 다니라”고 윽박지르는 오토바이 아저씨가 뒤에서 갑자기 튀어나왔을 때다.
이렇게 숨 좀 돌리려고 했는데, 엔딩에서 갑자기 이동욱의 전생이 왕이었음을 보여주는, 우수에 젖은 왕의 얼굴로 변해 지나가면서 그만 ‘숨멎’ 해버리는 것이다.
‘도깨비’는 10회까지 달려오면서 웬만한 극중 미스터리와 궁금증을 풀어내어 보여줬다. 주요 등장인물들의 전생과 더불어 얽히고 설킨 인연이 밝혀졌다. 하지만 아직도 안 풀린 궁금증 두 가지가 있다. 왕여의 눈을 가리고 김신과 왕비를 죽게 만든 간신은 과연 현생에 누구로 환생한 것인지,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유덕화(육성재)의 정체는 무엇인지 하는 점이다.
이미 1회 때부터 각종 ‘능력자’ 네티즌들이 이런 미스터리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유덕화는 칠성(신) 혹은 월하노인(중매의 신)이라는 의견이 소개됐고, 거기에 대해 아직도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더 궁금한 건 간신의 정체다. 과거의 간신(배우 김병철)과 현재 유덕화의 비서(배우 조우진)이 마치 일인이역 처럼 보일 정도로 비슷한 인상의 얼굴로 등장하는 게 제작진의 ‘낚시’인지, 혹은 ‘대놓고 힌트’인지도 흥미진진하다.
‘도깨비’의 매력도 여기에 있다. 움직이는 화보를 보는 듯한 공유와 이동욱이 등장하는데 이들이 살짝 망가지면서 웃음을 유발하고, 진지하고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하면서도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다층적인 재미가 있다.
이 드라마를 보면, 김은숙 작가야 말로 ‘도깨비’ 같은 드라마 작가라는 감탄이 연신 터진다. ‘태양의 후예’로 메가히트를 기록한 게 2016년 봄인데, 불과 몇 개월 만에 또 다른 판타지물을 이렇게 보란 듯이 성공시켰다. 믿을 수 없는 연승 행진이다.
살짝 유치하지만 전혀 어색하거나 오글거리지 않는 감각적인 대사, 남녀 주인공에게 늘 쉽게 이뤄질 수 없는 애절한 스토리를 만들어서 몰입하게 만드는 짜릿함, 그리고 특히나 남자 주인공과 ‘서브 남주’로 불리는 남자 조연에게까지 감정이입을 하고 애정이 가게 만들어서 남자 캐릭터를 빛나게 만드는 기술은 그야말로 ‘장인’ 수준이다. 여기에 수많은 간접광고를 너무 밉지 않게 대놓고 욱여 넣어주는 기술까지.
김은숙 작가의 ‘판타지 설정’이 ‘시크릿 가든(2010년)’에서 귀여운 장식품이었다면, ‘도깨비’에서는 마음 놓고 휘두르는 조자룡 헌 칼 수준이다. ‘도깨비’를 볼 때면 가끔씩 여중생 시절 쌓아 놓고 봤던 판타지 순정만화 시리즈(‘아르미안의 네 딸들’ 류의 만화들)에 푹 빠졌을 때 느낌이 되살아나곤 한다.
그리고 쓸 데 없는 걱정이긴 하지만, 시크릿 가든의 길라임을 (그리고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를) 좋아하는 그 분도 요즘 한창 ‘도깨비’를 보고 있는 게 아닐까 문득 궁금해 지기도 한다. 드라마 보면서 하다하다 이런 생각까지 하다니, 이런 면에서 김은숙 작가가 참 대단하긴 대단하다.
마더티렉스 (프리랜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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