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는 국내 언론 최초로 기부금을 받는 단체들의 투명성과 효율성 검증을 시도했다. 조사의 첫 번째 어려움은 외부검증이 가능할 만큼 재정상태를 공개한 곳이 전체 단체의 1%도 안 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더 큰 난관은 경영정보를 공시한 단체들도 외부인이 돈의 쓰임새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게 선별적인 정보만 공개한다는 사실이다. 결국 우리 기부단체들 대다수는 돈을 어디에 지출했는지 확인하기 힘든 문제점을 공통적으로 안고 있었다. 한국은 세계 14위 경제교역국이지만, 기부수준은 세계 60위에 그치고 있다. 짠돌이 기부국이 된 건 기부에 박한 문화도 원인이겠지만 이처럼 투명하지 못한 기부단체가 자처한 측면이 크다. 통계청 조사에서 국민 10명 중 1명이 기부를 하고 싶어도 ‘기부금이 제대로 쓰이는지 신뢰가 가지 않는다’고 답했을 정도다. 사후관리에 나서지 않는 정부 역시 부정적인 이미지를 키우는데 한몫하고 있다.
● 공익법인 3만개 중 4,000곳만 경영공시
올해 초 현재 기부금을 받는 공익법인 수는 2만9,509개. 이들은 홈페이지에 회계내역을 공개해야 하지만 대부분은 겉핥기 식으로 대강만 공개한다. 이 가운데 자산 10억원, 연 수입 5억원 이상으로 비교적 규모가 커 국세청이 공시의무를 부여한 곳은 14%인 3,991개였다. 기부 선진국인 미국이 연 수입 2만5,000달러 이상, 영국은 5,000파운드 이상 소규모 기관까지 재정보고 의무를 지우고 있다. 우리 돈 860만~2,750만원 수준으로, 우리의 공시의무 보다 4~12배 강한 기준이다.
본보와 비영리기구(NPO) 평가기관 한국가이드스타는 3,991개 단체 중 투명성과 효율성을 검증할 수 있게 정보를 공개한 곳을 재차 선별했다. 조사 기준은 미국 복지단체 평가기관인 BBB(Better Business Bureau)의 자선단체 회계가이드를 우리 실정에 맞게 해 적용했다. 먼저 ▦외부감사를 진행하며 ▦대중모금 10억원 이상인 단체이되 ▦공공기관 또는 기업ㆍ종교ㆍ병원 단체가 아닌 곳을 대상으로 했다. 기부금과 월별기부금 합계가 맞지 않는 등 결산서류의 정확도가 부족한 단체들도 제외시켰다. 이 결과 놀랍게도 19개 단체만이 의미 있는 검증이 가능한 정보를 공개하고 있었고 여기에 구세군 자선냄비 등은 포함되지 못했다.
검증가능 19개 단체 공시도 허술
19개 단체의 투명성은 전문가들의 제안에 따라 ▦감사보고서 충실도 ▦홈페이지 자료공개 정도 ▦이사회 회의록 등 운영현황 ▦기부유도 프로그램 등을 기준으로 조사했다. 또 단체 효율성은 총 경비 대비 순수 사업비 비율로 측정했다. 조사 기준이나 조건이 다양해진 것은 단체마다 회계처리 방식을 달리하거나 공시내역도 허술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령 기부금품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은 기부금의 최고 15% 이내에서 모집비용, 관리ㆍ운영비, 홍보ㆍ인건비 등을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단체들의 감사보고서에서 이런 내용을 확인하기란 쉽지 않았다. 자산 100억원이 넘는 대형 단체 가운데 아산사회복지재단, 대한민국재향군인회, 대한구세군유지재단 등은 외부감사 규정까지 무시, 회계정보 신뢰성에 의문을 갖게 했다. 한국가이드스타 관계자는 “외부감사 공시를 하지 않아도 불이익이 없으니 무시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 공룡 기부단체가 지배
조사 결과, 먼저 기부금이 일부에 편중되면서 공룡기관이 등장하는 부작용이 확연했다. 3,991개 공익법인 중 가장 많은 대중모금을 한 곳(기업ㆍ종교ㆍ병원 제외)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로 지난해 약 5,800억원을 모았다. 2조원으로 추정되는 개인기부의 4분의1 이상에 달하는 액수다. 이를 포함, 국세청 공시 기부금 상위 10개 법인의 모금액이 전체의 76.01%를 차지할 만큼 편중현상은 심각했다. 특정 단체에 기부금이 몰리는 이유는 자신들의 명성과 유명인을 앞세워 백화점 식 사업을 펼치기 때문이다. 기부금 모집 상위에 오른 한국월드비전의 경우 기부자가 쉽게 모금 효율성을 알아볼 정도의 자료공개보다는 김혜자 박상원 한혜진 지진희 유지태 박정아 유준상 홍은희 신애라 등 28명의 연예인을 앞세워 모금활동에 집중하고 있었다. 기부금 모금 상위단체들은 빈곤층 지원과 함께 ▦북한지원 ▦빈곤아동 등 해외후원 ▦국제구호사업 ▦교육사업을 공통적으로 추진하고 있었다. 정무성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모금방법이 체계적이지 않고, 사업도 갖가지로 벌여 전문성마저 떨어지는 후진적 기부단체의 전형적 행태”라고 비판했다. 미국 등지에선 단체의 권력화를 우려해 특정 단체 중심의 모금을 하지 않는다.
● 공룡들도 허점 투성이
조사에서 효율성과 투명성 검증이 가능한 19개 단체 중 효율성 상위인 곳들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허점 투성이였다. 효율성 6위를 기록한 한국월드비전마저 회계 투명성을 갖췄다고 보기에 역부족이었다. 홈페이지에 공개한 2013년 재무현황을 보면 총지출에서 북한, 해외, 교회협력 등의 순수 사업비가 73%로 평균이상을 나타냈다. 하지만 사업기획, 자료조사, 교육훈련, 감사 등을 기타지원사업으로 분류, 모금비용에 쓰인 비용을 산출하기에는 무리였다. 다만 국세청 공시에 기획사업비, 홍보사업비, 후원개발사업비 등을 공개해 기부금의 8.7%를 모금비용으로 쓴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반면 미국의 월드비전은 홈페이지에 순수 사업비로 지출의 83%, 모금비는 12%, 인건비 등 운영비는 5%를 썼다고 공개, 누구나 쉽게 투명성을 느끼도록 했다. 전현경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 연구실장은 “선진국에선 단체들이 자발적 공개를 하고, 공개내용에 대한 분석도 다양해 기부자의 선택의 폭이 넓다”고 했다.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는 전체 지출 약 621억5,000만원 중 사업비가 72.68%로 효율성에서 평균수준을 상회했으나 후원개발관리비로 13.2%(81억7,439만원)를 지출했다. 다만 일반관리 운영비 2.9%(18억여원) 등을 가감없이 공개해 투명성은 높였다. 효율성에서 19위를 차지한 대한사회복지회의 경우 한서메디칼의원 등 시설 20곳을 운영하며 경비의 53.5%(108억원)을 인건비로 지출, 사업비 비중이 낮을 수 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있었다. BBB는 적정 순수 사업비 비중을 65%로, 미국 NPO평가기관 채리티내비게이터(CN)는 79%를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 후원금 쓰임새 검증할 때
전문가 10인을 상대로 한 본보 설문조사에 5점 만점으로 매긴 기부단체들의 투명성은 2.95점, 효율성은 3.0점, 재무건전성은 2.83점, 지배구조는 2.6점으로 나타났다. 전체적으로 겨우 평균치를 상회하는 수준이었다. 사회복지단체, 시민단체, 학계인사들인 전문가 10인은 기본적인 재무상태 공개를 등한시 하는 것이 기부를 가로막는 첫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후원한 돈이 목적에 따라 제대로 쓰이는지 검증할 시기라고 한 목소리를 냈다. 김희정 한국NPO협의회 사무국장은 “재정 등의 투명성만 강조하지 말고 후원한 돈을 목적대로 썼는지, 후원자들에게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좀 더 애정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법인 운영자가 설립자에서 2,3세로 넘어가면서 민주적 성향이 높아졌다”(최상미 숭실대 교수) “외부 공익이사가 필수로 들어오는 등 구조상으로 부족할 게 없다”(박두준 한국가이드스타 사무총장)며 과거에 비해 개선된 점을 평가하는 의견이 있었던 반면 “대표의 손과 발이 될 수 있는 인사들로 이사회가 임의 구성되고 있다”(강철희 연세대 교수)는 지적도 나왔다. 윤지영 ODA워치 정책기획팀장은 “기부단체의 빈부격차가 매우 심하다”며 “괜찮은 단체도 많은데 이름이 알려지지 않다 보니 기부가 늘 수가 없다”고 안타까워 했다.
● 내년이면 바뀔까
공익단체들은 불성실 공시 등을 하면서도 증여세와 상속세 등 세금감면 혜택을 매년 누리고 있다. 최근 5년간 공익법인에 대한 비과세(법인세 혜택 제외)는 총 5,820억원에 이른다. 미국의 경우 비영리법인이 면세혜택을 얻기 위해서는 목적사업, 자산사용 등에 대한 정관명시 여부, 공익목적사업 수행여부 등에 대해 국세청(IRS)의 공익성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통과한 단체는 총소득, 연 수입과 지출, 운영사업 내용 등을 포함한 신고서 Form990(표준화된 재무신고양식) 등을 매년 제출해야 한다. 종교단체(연수입 5,000달러 미만)도 제출 대상이며 이를 어길 경우 최고 1만달러 또는 총수입의 5%를 벌금으로 내야 할 정도로 엄격하다. 김관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분식회계 등 불법을 저지른 단체를 적발한 실적을 내놓지 못할 정도로 제대로 된 사후검증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공익법인이 탈세 창구가 아닌 우리사회의 공익을 추구하도록 대대적인 관리감독 시스템 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국세청은 내년 3월 공익법인의 고유목적 수입, 지출 등을 표준화된 양식에 맞춰 공시하도록 하는 등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개선할 계획이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권영은기자 you@hk.co.kr
도움말 주신 분들(가나다 순)
강철희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김희정 한국NPO협의회 사무국장
박두준 한국가이드스타 사무총장
박진희 삼일미래재단 사무국장
박태규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윤지영 ODA워치 정책기획팀장
이상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
전현경 아름다운재단 연구실장
최상미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최영우 도움과나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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