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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구조조정의 방법

입력
2016.04.26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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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적 경영으로 이익을 내지 못하고 정부나 은행 지원을 받아 연명하는 기업을 흔히 좀비기업이라 부른다. 작년 한 해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은 좀비기업이 상장사 1,717곳 가운데 450곳에 달했다. 무려 26% 규모인데 이들 중 상당수는 조선, 해운, 철강, 건설 및 석유화학 등 5대 핵심 업종에 몰려있다. 특히, 조선 및 해운업 위기는 정도가 심각하다. 유가하락으로 해양플랜트 수요가 줄어든 데다,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물류 수요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좀비기업의 만연은 상장기업에 한정되지 않는다. OECD 27개 회원국 가운데 한국은 정부 보조로 목숨을 연명하는 중소기업이 가장 많은 나라다. 2007년 파산 지수를 1로 했을 때 2014년 우리나라 중소기업 파산 수준은 0.37로 OECD 국가 중 가장 낮다. 같은 기간 이탈리아와 노르웨이의 파산 수준은 각각 2.55, 1.92로 증가했다. 파산이 줄어든 이유는 기업 경쟁력 향상이나 정부 지원으로 요약되는데, OECD에 따르면 우리의 경우 후자가 핵심 원인이다.

이와 같은 기업의 좀비화는 종횡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협력관계로 맺어진 위계적 네트워크 하에서 높은 곳의 위기는 중소기업으로 전가되며, 아래쪽 위험은 다시 대기업으로 환원된다. 더 큰 문제는 산업 위기가 초래하는 금융 위험이다. 보고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 한 곳에 대한 금융권의 신용대출은 약 21조7,000억원에 달한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은행 대출도 1조8,000억원이다. 특수은행 몫이 크지만 시중은행 부담도 적지 않다. 금융권 위기마저 현실화되면 해법을 찾기 쉽지 않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부와 정치권을 중심으로 구조조정 논의가 뜨겁다. 그러나 근로자, 기업, 금융기관 등이 얽혀 있어 답을 찾기 쉽지 않다. 구조조정이 초래할 효과를 가늠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구조조정을 지원하기 위해 노동개혁법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야당은 실업급여 지급액을 올리고 지급기간을 연장해 구조조정에 따르는 충격을 완화하자고 주장한다. 모두 틀린 주장은 아니나 진부하며, 결과를 예측하기도 쉽지 않다.

무엇을 먼저 해야 할까. 구조조정은 부실사업이나 비효율적 조직을 경쟁력 있는 체계로 재편하는 과정이다. 사업의 축소·폐지, 중복 사업 통폐합, 인원 감축 등의 방법으로 이루어지며 이해관계자간 갈등 나아가 고통이 수반되는 과정이다. 따라서 목표가 무엇인지 분명해야 하며, 언제까지 지속될지 기간이 특정되어야 한다. 아울러 구조조정으로 기대하는 결과가 명확하게 제시되어야 한다. 그래야 노동조합, 채권기관, 지역사회 등 이해관계자들의 고통 분담과 동참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정책 및 정치 논리에 따라 사업이 청산되거나 통폐합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 특히, 사업 위기가 구조적 원인 때문인지 경기순환에 의한 것인지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후자의 경우라면 사업폐지와 인력감축의 구조조정 방법은 매우 위험한 선택이 될 수 있다. 1980년대 말 축소지향 구조조정으로 산업기반 위축과 경쟁력 상실을 경험했던 일본 조선업의 사례는 우리에게 주요한 교훈이다. 아울러 전문 인력 이탈로 인한 숙련 공백이 쉽게 채워지지 않는다는 점 또한 구조조정 과정에서 신중히 고려해야 할 요소다.

마지막은 근로자 참여 문제다. 기업의 법적 소유권은 주주에게 있고 파산에 따른 위험도 우선은 그들 몫이다. 논리상 근로자는 임금을 받아 회사를 떠나면 그만이다. 하지만 우리는 사정이 좀 다르다. 장기근속에 따른 기업 특수적 숙련과 외부노동시장 미발달로 근로자의 이직 가능성은 높지 않으며 결국 그들의 삶은 특정 기업에 종속된다. 기업과 근로자가 운명을 같이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주주에 상응해 근로자에게도 기업의 성과와 자산에 대한 청구권이 부여되어야 한다. 그래야 구조조정 후폭풍을 최소화 할 수 있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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