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현재 석유화학업계가 저유가로 인한 수익 증가로 비교적 좋은 실적을 올리고 있지만 유가가 올라갈 경우엔 원가 경쟁력이 떨어져 수익성이 악화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때문에 석유화학제품 감산을 위한 설비 통폐합 등 조속한 사업 재편이 절실하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선 업계 자율적인 감산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가동률이 떨어지는 공장을 다른 기업이 매입하는 기업간 통폐합 등 ‘제2의 빅딜’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28일 정부가 지목한 석유화학업계의 공급 과잉 품목은 페트병 원료인 테레프탈산(TPA), 장난감이나 식품 용기에 쓰이는 폴리스티렌(PS), 타이어와 신발 등의 원료인 합성고무(BR, SBR), 전선 피복과 인조피혁 등에 쓰이는 폴리염화비닐(PVC) 등 4개 품목이다.
이 가운데 TPA는 2011년만 해도 45억달러(약 4조9,000억원)를 수출했을 정도로 대표적인 ‘효자 품목’이었지만 중국이 TPA 생산설비를 대규모로 증설하며 공급 과잉이 시작됐다. 중국의 TPA 자급률이 100%에 육박하며 국내 업체의 수출은 이미 70%나 급감했다.
정부는 기업들이 설비와 생산량을 줄여야 한다고 압박하고 나섰다. 그러나 석유화학업체 최고경영자(CEO)들은 “정부 방침에 따를 것”이라고 밝히면서도 복잡한 속내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업체마다 처한 상황이 달라 설비를 일괄적으로 감축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TPA는 한화종합화학이 200만톤, 삼남석유화학이 180만톤, 태광산업이 100만톤의 연간 생산 능력을 갖고 있다. 이들 빅3 기업들은 이미 설비 가동을 중단했거나 생산량을 조정하는 등 자체적인 구조조정을 실시한 상태다. 실제로 한화종합화학은 울산 공장의 40만톤 규모 설비의 가동을 중단해 현재 160만톤만 생산하고 있다. 삼남종합화학도 60만톤의 생산을 줄였고, 태광산업도 생산량을 조정해 90만톤을 생산하고 있다. 감산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추가 감축 여력이 높지 않다는 게 업체들의 항변이다.
롯데케미칼(60만톤)과 효성(42만톤)은 생산량의 대부분을 자체 생산하는 페트병과 폴리에스터 원료로 소비하고 있다. 생산을 줄일 경우 외부에서 구매하거나 완제품 생산을 줄여야 해, 역시 곤혹스런 표정이다.
PS, 합성고무, PVC도 상황은 비슷하다. 업계 관계자는 “공급 과잉이라고는 하지만 시장 상황이 바닥을 쳐 조금씩 수익성이 개선되고 있다”며 “많은 기업들이 이미 고부가 제품 위주로 사업 구조를 고도화하는 등 선제적인 구조조정을 실시했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설비 감축을 요구하긴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더 이상 구조조정을 미뤄선 안 된다는 게 정부 시각이다. 이날 석유화학업체 CEO들과 간담회를 가진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공급 과잉으로 진단된 분야는 기업의 사업 재편과 기업활력법 지원 등을 통해 과잉 설비를 해소해 나가야 할 것”이라며 “미래 고부가가치 제품에 대해서는 연구개발, 금융ㆍ세제 지원 등을 신속하게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한준규 기자 manb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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