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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촬영에 편집까지… 카메라 앞에 선 장애인 유튜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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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촬영에 편집까지… 카메라 앞에 선 장애인 유튜버들

입력
2017.06.0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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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지도 않고도 영화 비평을 하는 평론가가 있다. 그의 이름은 토미 에디슨. 미국의 시각 장애인 영화 평론가다. 그는 2011년부터 글로벌 동영상 커뮤니티 유튜브에 영화 비평을 담은 영상을 올리기 시작했다. (유튜브 채널 바로가기☞ Blind Film Critic Tommy Edison)

에디슨은 영화를 볼 수 없는 대신 영화 줄거리와 음악, 음향 효과에 집중해 비평한다. 그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은 구독자 수는 3만6,000명 가량. 조회수는 수만건에 달한다. 에디슨의 타고난 유쾌함과 정감 어린 농담, 여기다 영화를 볼 수 없기에 영화 결말을 누설하는 ‘스포일러’가 없다는 점도 그의 인기 비결이다.

우리나라에도 에디슨처럼 카메라 앞에 선 시각ㆍ청각 장애인이 있다. 이들은 다른 유튜버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취미를 바탕으로 직접 콘텐츠를 만들어 유통하고 시청자들과 소통한다. 신체적 불편을 극복하고 자신을 마음껏 표현하며 즐기는 이들의 비결을 알아봤다.

흔히 BB탄 총으로 불리는 에어소프트건을 취미로 수집하다 이를 소개하는 1인 유튜브 방송인 ‘브래드박 Bread Park’을 진행하는 시각장애인 박준현씨. 유튜브 캡처
흔히 BB탄 총으로 불리는 에어소프트건을 취미로 수집하다 이를 소개하는 1인 유튜브 방송인 ‘브래드박 Bread Park’을 진행하는 시각장애인 박준현씨. 유튜브 캡처

“이 빛을 못 보기 전에, 내 존재를 세상에 알리자”

음성 출력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아 촬영ㆍ편집

시각장애인 유튜버 박준현(25)씨는 지난해 2월 대학을 졸업할 즈음 빛의 여부만 알아차릴 정도로 시력이 크게 약화됐다. 시각장애 1급 판정을 받은 절망의 순간에 그는 “이 빛을 못 보기 전에, 내 존재를 세상에 알리자”는 생각으로 지난해 2월말부터 ‘브래드박 Bread Park’이란 이름의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다. (유튜브 채널 바로가기☞ 브래드박 Bread Park)

처음에는 유튜브에서 인기많은 소재인 ‘먹방’ 영상을 올렸지만 차별화가 이뤄지지 않아 조회수가 저조했다. 하지만 친구가 박씨의 취미인 에어소프트건(일명 BB탄 총) 수집을 살려보라고 추천한 후 박씨는 소재 변화를 꾀했다. 지난해 3월 올린 첫 에어소프트건 소개 영상이 5만건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는 등 반응이 좋자 에어소프트건은 그의 주된 방송 소재가 되었다.

박씨는 주변인의 도움 없이 주로 혼자서 영상을 제작한다. 때문에 그는 자신이 카메라에 잘 담기는지조차 볼 수 없다. 대신 그는 영상을 찍을 때 음성 출력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는다. 예컨대 카메라가 얼굴을 인식하면 ‘화면 상단 가운데에서 얼굴 인식이 되었습니다’라며 음성이 출력되는 방식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씨가 에어소프트건 소개 영상 하나를 만드는 데에는 보통 3일이 걸린다. 그가 총을 직접 볼 수 없다 보니 총에 새겨진 각인, 도장 상태 등 총기 세부 제원을 알기 위해 친한 에어소프트건 가게 사장님과 한참을 통화해야 한다. 이후 하루종일 총기를 소개하는 연습을 하고서야 박씨는 촬영에 돌입한다. 편집할 때도 음성 출력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아 박씨가 직접 한다. 영상 제목을 정할 때에도 박씨는 구글 트렌드의 인기 검색어를 활용해 제목을 정하고, 댓글들로 시청자의 반응을 꾸준히 확인한다.

박씨가 그동안 자신의 채널에 올린 영상 썸네일들. 에어소프트건이 박준현 씨의 주된 방송 소재다. 유튜브 캡쳐
박씨가 그동안 자신의 채널에 올린 영상 썸네일들. 에어소프트건이 박준현 씨의 주된 방송 소재다. 유튜브 캡쳐
1인 방송인 '루시퍼님'. 유튜브 캡처
1인 방송인 '루시퍼님'. 유튜브 캡처

청각장애인 유튜버 조재찬씨 프로게이머 좌절 후 방송 시작

시청자가 한두명이어도…꾸준히 방송해 어느덧 5,000시간

유튜버 조재찬(25)씨는 4살 때 고열 감기를 앓은 후 소리를 거의 못 듣게 됐다. 중학생 시절부터 프로게이머가 되기를 꿈꿨던 조씨는 그는 온라인 슈팅게임 ‘서든어택’ 7등, 온라인 팀슈팅 게임 ‘오버워치’ 상위 1%를 기록하는 등 뛰어난 실력을 갖췄다. 그는 여러 프로게임단에 지원했지만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번번이 거절당했다.

프로행의 좌절에 낙담하는 대신 조씨는 “뭐든 도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2011년 말 아프리카TV에서 자신이 게임하는 장면을 생중계하는 온라인 방송을 시작했다. 그의 장기인 서든어택과 오버워치, 최근에는 배틀 그라운드가 주요 종목이다. (유튜브 채널 바로가기☞ Lucifer)

말이 어눌한 조씨는 할 말이 많을 때는 메모장을 켜서 멘트를 정리한다. (왼쪽) 전에는 카카오톡 ‘플러스친구’를 이용해 방송 일정을 공지하기도 했다. (오른쪽)
말이 어눌한 조씨는 할 말이 많을 때는 메모장을 켜서 멘트를 정리한다. (왼쪽) 전에는 카카오톡 ‘플러스친구’를 이용해 방송 일정을 공지하기도 했다. (오른쪽)

조씨도 박씨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장애가 시청자와의 소통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비장애인보다 배의 노력을 한다. 약한 청력 때문에 비롯된 어눌한 발음을 극복하기 위해 할 말이 많을 땐 방송 멘트의 얼개를 메모장에 정리하는 식이다.

조씨의 강점은 2011년부터 7년째 이어온 꾸준함이다. 처음 방송을 시작했을 당시 시청자가 한 명, 많으면 두 명인 나날의 연속이었지만 그는 꾸준히 방송했다. 올해 2월 유튜브로 둥지로 옮긴 후에도 꾸준히 이어온 그의 게임 방송의 누적 방송 시간은 5,000 시간에 달한다.

장애는 박씨와 조씨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들은 재미난 방송을 위해 끊임 없이 고민하고 카메라 앞에 당당히 선다. 박씨는 “충분한 노력이 뒷받침 되면, 어떤 사람이든 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진우 인턴기자 (서울대 경제학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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