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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의 노예” 조교들 생지옥 언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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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의 노예” 조교들 생지옥 언제까지…

입력
2017.02.2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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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4시간 몸은 축나고

구두굽갈이 심부름 하고도

“뭘 한다고” 금전 보상 외면

근로계약서 작성 극소수

“미국처럼 노동자 권리 인정을”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지난해 서울의 한 사립대에서 통계학 석사과정을 마친 이모(30)씨는 23일 “연구실 조교생활은 생지옥이었다”고 했다. 지도교수 A씨의 일방적인 연구 지시와 인격모독, 협박이 지금도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그는 “‘배우기 위해’ 대학원에 왔지만 교수가 2년여 석사과정 내내 가르쳐주는 건 하나도 없었다”고 했다.

열 일 제쳐두고 연구에 몰두했지만, 돌아온 건 채찍질이었다. 연구가 더디다 싶을 때면 가차없이 다그치는 것은 물론, “외부에서 수천만 원을 지원받아 하는 프로젝트인데, 그 돈 네가 물어낼 거냐”는 등 협박성 발언도 거침없었다. 교수의 횡포 속에 2년을 버티고 졸업한 이씨는 지난해 8월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는 “후배들에게는 웬만하면 조교는 하지 말라고 조언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 조교들이 교수의 갑질에 신음하고 있다. ‘교수 말 한 마디면 매장당한다’는 말로 대표되는 ‘절대 권력’의 교수를 보좌(?)하면서 몸은 축나고, 스트레스는 쌓이고, 주머니는 비어가는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최근 연구조교를 지냈다는 이모(28)씨는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자괴감이 든다”고 말했다. 당시 이씨의 하루 평균 근무시간은 14시간, 아침 9시에 출근해 밤 11시에 퇴근하길 반복했다. 교수는 원하는 연구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무박 2일’ 연구로 조교들을 몰아세우기 일쑤였다.

조교들은 교수의 사적인 일에 동원되기도 한다. 서울의 한 여대에서 음대 석사과정을 마친 한모(30)씨는 “말이 조교지 모든 교수들의 시녀“라고 했다. 온갖 행정업무는 기본, 교수 개인일정 의전이나 구두 굽갈이 등 사적인 심부름도 그의 몫이었다. 그는 “교수들의 갑질 때문에 교수의 꿈을 포기했다”고 털어놓을 정도였다.

몰아치는 교수들의 독촉에 20대의 몸도 버텨나질 못한다. 이씨는 “피곤함에 여기 저기 아픈 곳이 생겨났고, 어떤 학생은 신체에 화학약품이 묻었는데 치료시간을 보장받지 못해 흉터가 남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학의 한 조교는 “연구에 매달리느라 수업을 제대로 듣지 못하거나 과제가 부실해 낮은 학점을 받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털어놨다.

금전적 보상이 이뤄진 것도 아니다. 몇몇 대학원에서는 교수에게 월 100만원 가량의 연구비를 조교에게 지급하거나, 외부 장학금을 추천해주도록 하고 있지만 무시되기 일쑤다. 대신 “네가 돈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인격모독을 주는 일이 다반사. “그저 가방 끈 긴 ‘고급 노예’일 뿐“이라는 한탄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과 전국대학원 총학생협의회가 공개한 국내 대학 조교의 근로여건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34개 대학 중 조교와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곳은 1군데에 불과했다. 대부분 장학금 형태로 급여가 지급되는데, 이마저도 최저임금에 턱없이 부족하다.

노 의원은 “미국 연방법원은 최근 학생 조교의 근로자 지위를 인정했고, 일본은 급여 외에도 도서구입비 등 복지혜택을 지급하고 있다”며 “국내에서도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시급히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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