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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기의 시네마니아] 딸들을 의협녀로 내세운 까닭은

입력
2015.08.19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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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협녀, 칼의 기억'.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협녀, 칼의 기억'.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스포일러 주의.

영화 ‘암살’과 ‘협녀, 칼의 기억’(이하 ‘협녀’)은 겉보기에 공통점이 없는 영화다. 여름 대목을 겨냥한 블록버스터라는 점이 그나마 닮았다고 할까.

‘암살’은 친일파를 처단하는 과정을 웃음과 스펙터클을 곁들여 보여준다. 친일파 척결이라는 메시지를 상업적으로 잘 전달하는, 의미와 재미를 지닌 작품이다. 국가와 사회라는 공동체를 새삼 되돌아보게 한다. ‘협녀’는 고려말을 배경으로 한국적 무협물을 지향하나 사실 무국적의 영화다. 시대는 그저 등장인물들이 칼을 휘두를 수 있는 배경으로서만 기능한다. 당대의 정치ㆍ사회적 현실은 반영하지 않는다. 통일신라말이나 멸망 직전의 백제를 시공간으로 삼아도 극 전개에 별반 차이가 없을 영화다. 심지어 당나라를 배경으로 해도 무방하다. 시대적 맥락은 생략되고 중국어권 무협물인 ‘영웅’과 ‘와호장룡’ ‘일대종사’ 등을 연상시키는 장면들이 스크린을 메운다. 가슴을 누를 애틋한 사랑이 있고, 눈동자가 커질 멋들어진 액션이 있어도 마음이 공명하지 않는다.

그러나 결말부에서 매우 큰 공통분모를 발견하게 된다. 독립군 안옥윤(전지현)은 거물 친일파인 아버지(이경영)를 암살하는 임무를 수행해야 하고, 타고난 무술인 홍이(김고은)는 권력욕에 사로잡힌 친부(이병헌)를 살해해야 하는 숙명과 맞닥트린다. 두 영화 속 아버지도 공통점을 지녔다. 돈이나 권력을 위해서라면 가족에게도 위해를 가하는 악당 중의 악당이다.

두 영화는 악당의 처단을 딸들의 몫으로 남긴다. ‘암살’과 ‘협녀’ 속 젊은 남자들 대부분은 지리멸렬이다. 신흥무관학교 출신의 속사포(조진웅)도, 살인청부업자 하와이피스톨(하정우)도 비겁하거나 냉소적이고, 홍이를 연모하는 율(이준호)은 권력에 머리를 조아리는 인물이다. 아버지들은 탐욕스럽고 아들들은 비겁하다. 강호의 도를 가슴에 품고선 단호하게 정의 실현에 나서는 이들은 여성이다(다만 ‘암살’에선 안옥윤이 멈칫하는 순간 하와이피스톨이 안옥윤의 아버지를 죽인다).

의협심으로 무장한 딸들의 활약엔 상술이 숨겨져 있다. 칼을 휘두르거나 방아쇠를 당기는 여성의 수려한 액션이 갖는 상업적 폭발력을 노린 것이다. 한국사회의 현실과 욕망도 반영돼 있다. 못나고 못된 남성 대신 약자로 인식돼 온 여성이 사회 악을 척결하는 판타지를 대중들은 보고 싶은 것인지 모른다. 영화 ‘협녀’는 관객들의 외면을 받고 있으나 지금 스크린은 ‘협녀’ 전성시대임이 분명하다.

라제기 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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