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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360°]반전의 독재자 에르도안 대통령

입력
2016.07.2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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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럽의 가장 뜨거운(hot) 인물은 쿠데타 위기를 정권 강화의 기회로 뒤집은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다. 그는 지난 15일(현지시간) 밤 ‘독재 타도’를 외치며 쿠데타를 일으킨 일부 군인들 때문에 축출 위기에 내몰렸다. 하지만 그는 사회관계형서비스(SNS) 트위터를 통해 쿠데타 저지를 호소했고, 여기 호응한 국민들이 직접 행동에 나서며 쿠데타 시도는 6시간 만에 불발로 끝났다.

그런데 국민들 덕에 위기를 넘긴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후 놀라운 반전극을 펼치고 있다. 전국적으로 수만 명을 일자리에서 내쫓고 체포하는 피의 숙청을 벌이며 3개월 간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는 등 쿠데타를 기회로 철권 통치를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외신들은 쿠데타가 그의 ‘자작극’이 아니냐는 의심까지 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그다지 놀라운 상황은 아니다. 쿠데타 발발 이전부터 그는 ‘21세기 술탄’, ‘터키의 히틀러’이라 불리는 유럽의 악명 높은 독재자였다. 14년 간 집권을 하며 인권과 언론 탄압 등 권위주의 통치를 해왔기 때문이다.

지난 5월 독일 쾰른의 한 햄버거 가게가 그의 이름을 딴 ‘에르도안 햄버거’를 선보인 것이 단적인 사례다. 고기 위에 두툼하게 염소젖으로 만든 치즈를 얹은 이 햄버거는 독일의 한 코미디언이 그에 대해 “소수자를 억압하는 것만큼 염소와 성교하기를 좋아한다”고 비꼰 말에서 착안한 것이다.

쾰른의 햄버거 가게 ‘어반 버거리’의 외르크 티만 사장이 터키의 에르디안 대통령의 이름을 딴 ‘에르도안 버거’를 소개하고 있다. 독일 빌트지
쾰른의 햄버거 가게 ‘어반 버거리’의 외르크 티만 사장이 터키의 에르디안 대통령의 이름을 딴 ‘에르도안 버거’를 소개하고 있다. 독일 빌트지

자수성가로 대통령까지

1954년 흑해연안 리제에서 태어난 에르도안은 책값을 벌기 위해 이스탄불 거리에서 참깨 빵과 레모네이드를 파는 등 유년 시절을 가난하게 보냈다. 그는 1991년 고향 카이세리에서 의원에 당선되며 정치에 입문했다. 이후 1994년 40세 나이에 이스탄불 시장에 당선돼 3대 과제였던 물 부족, 공기 오염, 교통지옥 문제를 해결하면서 전국적 정치인이 됐다.

2001년 이슬람계 정당인 현 집권당 정의개발당(AKP)을 창당해 대표가 됐다. AKP당은 이듬해 조기 총선에서 34.1% 득표로 전체 의석의 66%를 차지했다. 터키 건국 후 처음으로 이슬람계 정당의 단독 정부가 출범한 것이다.

하지만 에르도안은 집권 여당 당수인데도 불구하고 의원에 당선되지 못해서 총리직에 오르지 못했다. 1999년 이슬람계 정당이 탄압받자 종교로 국민을 선동했다는 혐의를 받아 4개월간 복역한 전과 때문이었다.

그는 2003년 3월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당선된 후 총리에 취임했다. 이후 그는 2007년과 2011년 총선에서 잇따라 승리해 세 번 의원 연임에 성공했고 2009년과 2014년 3월 지방선거에서도 집권당의 승리를 이끌었다. 그는 서민적인 친화력을 앞세워 자수성가로 총리 자리까지 오른 점 때문에 한국에서 열린 2010년 G20정상회의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닮은꼴’로 주목 받았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이스탄불에서 거행된 터키 쿠데타 희생자 장례식에 참석해 두 손으로 눈물을 닦고 있다. 이스탄불=AP/뉴시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이스탄불에서 거행된 터키 쿠데타 희생자 장례식에 참석해 두 손으로 눈물을 닦고 있다. 이스탄불=AP/뉴시스

경제 안정화ㆍ이슬람주의로 지지기반 다져

에르도안이 연거푸 선거에서 승리한 비결은 경제 해결사를 자처했기 때문이다. ‘오스만 투르크의 영광을 경제로 재현하겠다’고 밝힌 그는 이슬람권에서 보기 드문 적극적 투자유치 정책을 펼쳐 ‘경제총리’라는 이미지를 굳혔다. 실제로 그는 재임 6년 간 연평균 경제성장률 7.3%를 달성하고 국제금융기구(IMF)의 빚을 235억 달러에서 70억 달러로 줄였다. 20%대였던 실업률도 10% 선으로 떨어뜨렸다.

수치가 증명한 경제 정책 덕분에 2007년 재집권에 성공한 에르도안은 신오스만주의 등 이슬람 이념을 전면에 내걸었다. 원래 터키는 이슬람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정치와 종교를 엄격히 분리한 세속주의를 택하고 있다. 건국의 아버지 케말 파샤가 세속주의를 택한 이래 내려온 전통이다.

에르도안의 새로운 노선은 국민의 95%를 이루는 이슬람교도들의 높은 지지를 받았다. 세속주의를 내세운 과거 정권의 경제적 무능과 대조를 이룬 데다 유럽연합(EU)에 가입하지 못해 자존심이 상한 국민들에게 이슬람주의라는 비전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반면 권위적인 통치 방식과 지나친 이슬람화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2013년 그의 아들이 뇌물 수수를 논의하고, 방송사에 야당 대표의 연설을 중단하라고 압력을 넣은 도청자료가 폭로되며 큰 위기를 맞았다. 이때 대다수 지식인과 학생, 군부가 그에게 등을 돌렸다. 하지만 농민들과 서민들은 그에 대한 지지를 접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작년 11월 터키 안탈리아 레그넘 호텔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도착행사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안탈리아=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이 작년 11월 터키 안탈리아 레그넘 호텔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도착행사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안탈리아=연합뉴스

14년째 철권 통치..’터키판 박정희’ 평가도

위기를 겪은 에르도안은 더욱 노골적으로 권력에 대한 집착을 드러냈다. 헌법을 바꿔 대통령 직선제를 도입한 후 대선에 나가 2014년 대통령에 당선됐다. 실세 총리였던 그가 대통령이 되면서 내각제가 유명무실해지자 최근에는 내각제를 대통령 중심제로 전환하려는 시도에 나섰다. 이를 두고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5월 사설에서 그를 독재자(autocratic)로 규정하며 일인 통치와 장기 집권을 시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에르도안은 이 과정에서 비판 세력에 무차별적인 철퇴를 휘둘렀다. 최근 1년 반 사이 대통령 모욕죄로 기소된 사람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르한 파묵을 비롯해 2,000명에 육박한다. 경제 성장을 이끌었지만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고 장기집권을 꾀하는 점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유사한 측면이 많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그를 ‘터키판 박정희’로 부른다.

도를 넘어선 사치스러운 생활도 도마 위에 올랐다. 공개된 재산은 2,000억원이 넘으며 대통령 연봉만 646억원으로 전세계 지도자들 가운데 가장 많다. 수도인 앙카라 서쪽에 지은 대통령 궁 ‘AK SARAY’는 부지 면적이 백악관의 30배에 이르고 방이 무려 1,150개다. 영국의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이 궁을 짓는데 들어간 비용이 총 7,520억원이다. 방문 한 짝만 5,270만원이다.

터키 수도인 앙카라 서쪽에 지은 대통령 궁 ‘AK SARAY’. 부지 면적이 백악관의 30배에 달한다. 데일리 메일 홈페이지
터키 수도인 앙카라 서쪽에 지은 대통령 궁 ‘AK SARAY’. 부지 면적이 백악관의 30배에 달한다. 데일리 메일 홈페이지

‘세속주의 수호자’ 군부의 침몰

지난 15일 일어난 군부의 쿠데타는 에르도안의 이슬람 강화 노선과 관련이 있다. 쿠데타세력은 성명을 통해 “(에르도안) 정부가 민주적이고 세속주의적인 법의 지배를 무너뜨렸다”고 밝혔다. 독재와 이슬람화를 막기 위해 군부가 나섰다는 얘기다.

터키 역사에서 군부는 특수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국가의 통제를 받지 않고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독자적인 세력에 가까웠다. 국가 안에 존재하는 세력이란 뜻의 ‘딥 스테이트(deep state)’로 불리는 이유다.

특히 군부는 터키 공화정의 기본 정신인 세속주의의 수호자 역할을 해왔다. 공화정 수립 이후 군부가 일으켰던 네 차례(1960, 71, 80, 97년) 쿠데타는 모두 이슬람주의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에 대한 반발이었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집권 기간 쿠데타가 여러 차례 시도됐던 것도 마찬가지 이유였다. 이번 쿠데타 또한 이런 흐름의 연장선에서 발생했다.

실제로 에르도안은 쿠데타를 빌미로 또 다시 군부 내 세속주의 세력 숙청에 나서고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에르도안이 국내의 유일한 견제 세력인 군부를 무력화하기 위해 ‘자작극’을 꾸민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쿠데타는 (이전과 달리)사회 엘리트층의 지지가 없었고 (쿠데타 세력이)명확한 계획도 없었다”며 “지금까지 발생한 쿠데타와 비교할 때 이상한 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20일 터키 수도 앙카라에서 국가안보회의를 마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3개월간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20일 터키 수도 앙카라에서 국가안보회의를 마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3개월간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신오스만제국’ 으로 회귀하나

에르도안 대통령은 쿠데타 진압 직후 “쿠데타 세력들이 혹독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며 ‘피의 숙청’을 예고했다. 실제로 17일 터키 내무부는 쿠테타와 연루됐다고 의심되는 전국 공무원 8,777명의 업무를 중지시켰다. 교육당국 역시 사립학교 교사 2만1, 000명의 면허를 취소했다.

급기야 20일에 국가안전보장회의와 내각 회의를 열어 3개월 동안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이 기간 동안 대통령과 내각은 의회 입법을 거치지 않고 즉각 발효되는 새로운 칙령을 만들 수 있다. 다음날에는 군에 ‘새로운 피’를 수혈해 군 조직을 재구성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터키 안팎에 그를 견제한 세력이 사라진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유럽연합(EU)은 유럽의 난민사태를 풀기 위해 터키에 손을 내밀어야 하는 상황이고 미국도 시리아 사태 때문에 터키의 지지가 아쉬운 처지다.

세속주의를 지켜온 군부는 이번 쿠데타를 통해 더 이상 국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1922년 케말 파샤가 세운 터키 공화국이 새로운 ‘술탄’(오스만제국 황제의 공식 칭호) 에르도안을 앞세운 신오스만 제국으로 회귀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유환구기자 redsun@hankookilbo.com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초법적 권력을 휘두를 것으로 우려되는 가운데, BBC는 그에게 '무자비한 대통령'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BBC 캡처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초법적 권력을 휘두를 것으로 우려되는 가운데, BBC는 그에게 '무자비한 대통령'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BBC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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