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들어 미국과 러시아의 갈등이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친러 반군을 내세워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세에 나선 러시아가 미국과의 핵 안보 협력마저 거부하자, 미국도 이전보다 훨씬 강경한 대러 제재 검토에 나섰다.
워싱턴포스트는 25일자 사설에서 “핵안보에 대한 미ㆍ러 협력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며 “러시아가 지난해 12월 미국 관리들에게 핵안보 협력을 끝내겠다는 뜻을 통보해왔다”고 밝혔다. 핵안보 협력은 1991년 냉전 종식 이후 양대 핵 강국인 미국과 러시아의 국제안보협력을 상징해온 키워드였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핵무기 재고와 핵 물질을 가진 두 나라의 적극적인 핵감축으로 국제사회에 팽배했던 ‘핵전쟁 공포’가 결정적으로 낮아졌다.
냉전 직후 7,600개에 달하던 핵탄두가 불용화됐고 4,100t의 화학무기가 제거됐으며 2,600개가 넘는 핵운반 체계가 파괴됐다. 또 2003년 리비아 핵폐기와 지난해 시리아 화학무기 폐기에도 이 프로그램이 원용됐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이 러시아 핵감축 지원예산을 끊고 러시아가 핵 협력 중단을 통보한 것은 국제 핵 안보체제에 중대한 적신호를 던지는 ‘사건’으로 평가된다. 이 신문은 “미ㆍ러 양자관계가 블라드미르 푸틴 대통령의 배신과 호전성으로 악화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핵 안보 협력 거부에 맞춰 러시아가 반군 지원을 본격 재개하면서 이달 들어 우크라이나 사태도 크게 악화하고 있다. 반군이 러시아 본토와 크림반도를 연결하는 요충지인 우크라이나 남동부 마리우폴에 무차별 포격을 가하면서 최소 30명이 숨지고 95명이 부상했다. 또 지난 17일 반군의 도네츠크 공항에 대한 대규모 공격과 정부군의 반격에서도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진영의 대응도 거칠어지고 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의 통화에서 반군이 아닌 우크라이나 정부군의 소행이라고 항변했으나, 이를 일축하고 강력한 추가 제재를 시사하고 나섰다.
인도를 방문 중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반군의 공격을 지원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러시아에 대한 압박 수위를 점차 높이겠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군사적 대치를 제외한 모든 추가 옵션을 검토하겠다”며 “특히 유럽 등 국제사회와 함께 긴밀히 협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페데리카 모게리니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도 EU 28개국 외무장관이 이달 29일 긴급 회동하고 우크라이나 사태 악화에 따른 대응 방안을 논의한다고 밝혔다. 도널드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트위터를 통해 “유화정책은 침략자에게 더 큰 폭력을 부추긴다”며 “환상이 아닌 냉혹한 현실을 바탕으로 한 정책을 한층 더 강화할 때”라고 말했다.
로이터 통신은 EU 정치인들이 최근 수개월간 러시아 제재 완화 시점을 논의하고 있었으나 이제는 논의 주제가 제재 강화 방안으로 바뀌었다고 전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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