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강남역 사건 후… 2030, 페미니즘 ‘열공’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강남역 사건 후… 2030, 페미니즘 ‘열공’

입력
2017.05.18 04:40
0 0

작년 사건발생 시점~올해 4월

페미니즘 책 판매 3.2배나 늘어

남성도 페미니즘 전공으로 택해

‘단톡방 성희롱’ 진지하게 고민

“일상서 성평등 감수성 높아져”

여성인권단체 회원들이 17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에서 강남역 살인사건 1주기를 맞아 기자회견을 열고 메시지가 적힌 포스트잇을 상징하는 천을 들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성인권단체 회원들이 17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에서 강남역 살인사건 1주기를 맞아 기자회견을 열고 메시지가 적힌 포스트잇을 상징하는 천을 들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강남역 살인사건’ 직후 전북대 앞 지하보도에 ‘추모의 벽’을 만들어 포스트잇 추모행사를 열었던 윤민우(25)씨는 이후 페미니즘(여성주의)을 본격 공부하며 남성 페미니스트가 됐다. 윤씨는 “어려서부터 늘 아버지는 누워 계시고 어머니는 살림을 했는데, 어느 날 문득 불합리하게 느껴졌다”며 “여성학 관점에서 가부장적인 사회를 바라보면서 익숙한 일상도 불편하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에 사는 회사원 이모(39)씨는 “페미니즘 책을 읽다가 ‘우리 사회에 믿고 따를 만한 어른이 없다고 하는데, 여성이나 소수자는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어른이라고 칭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읽고 머리를 얻어 맞은 것 같았다”며 “나도 여자이지만 ‘사회의 어른’이라고 하면 으레 남성 중에서 찾는 편협함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 17일 ‘여자들이 나를 항상 무시한다’는 이유로 20대 여성이 살해당한 강남역 살인사건은 역설적으로 페미니즘의 저변을 대중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젊은 층이 급증했고, 적극적인 행동으로 나서 성과를 내기도 했다. 여성이 대다수지만, 생각을 공유하는 남성도 늘어났다.

실제 지난 1년간 페미니즘 도서 판매량은 급격히 늘었다. 17일 예스24에 따르면 해당 사건이 발생한 지난해 5월부터 올해 4월까지 페미니즘 도서 판매량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3.2배 늘었다. 20대 여성(23.8%)이 가장 많았지만, 30대는 남성(14.3%)과 여성(14.5%)이 비슷할 정도이며, 전체 페미니즘 도서의 32%를 남성이 구매했다.

1년간 페미니즘 서적을 8권이나 읽었다는 직장인 손아라(31)씨는 “추모 현장에 다녀온 후 온라인에서만 있는 일이라 여겼던 남녀갈등 문제를 지나치면 안되겠다고 생각해 책을 읽기 시작했다”며 “예전 같으면 페미니즘 얘기만 꺼내도 예민한 사람, 까칠한 사람 취급을 받았지만 지금은 친구들도 공감하며 대화를 나눈다”고 말했다.

페미니즘을 전공으로 선택한 남성도 있다. 배용수(29)씨는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한국의 성차별 구조와 젠더 문화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싶어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공부하고 있다. 그는 “대다수 남성이 여성혐오 현상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대선 후보들도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는 선언을 하는 등 여성주의에 대한 협소했던 인식은 개선된 것 같다”고 말했다. 성매매를 반대하는 남성들의 수다모임 ‘시시콜콜’의 멤버인 대학생 이장원(24)씨도 “여성들이 공포를 호소하는 원인을 이해하고 나니 대학 내 만연한 단톡방 성희롱 문제, 성매매 문제 등 일상 속 다른 성차별 문화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페미니즘 정당 창당을 꿈꾸는 ‘페미당당’에서 활동하는 심미섭(26)씨는 “탄핵 촛불 집회에서 ‘미스박’이라는 단어 사용에 대한 문제를 제기해 사과를 받았는데, 예전 같으면 공론화되기 어려운 주장도 페미니즘 운동을 하는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가 모이니 변화를 이룬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건 이후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양성평등에 대한 핵심을 빗겨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남역10번출구’ 활동가 이지원씨는 “남녀 미분리 화장실 출입구를 분리하는 게 대책으로 나왔는데, 화장실이어서 여성이 살해당한 게 아니지 않느냐”며 “여성에 대한 폭력이 문화와 분위기로부터 비롯된다는 걸 제대로 인식한 정책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면에서 서울시가 어린이집 아동, 초‧중학생 3만여 명을 대상으로 성인지 감수성 향상을 위한 강좌를 시작하기로 한 것 등은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전문가들은 성차별에 대한 자기검열이 예민해지고 있는 점은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평가했다. 사회학자 오찬호씨는 “SBS 선거개표방송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장수에, 심상정 전 정의당 후보는 공주에 비교하는 그래픽을 놓고도 사람들은 이게 여성혐오냐 아니냐를 논의할 정도로 여성주의 관점으로 사회를 보는 감수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장미혜 여성정책연구원 안전건강연구센터장은 “경찰청, 여성가족부, 국민안전처로 분산돼 있는 여성폭력 방지 체계를 단일화하는 컨트롤타워도 만들어져야 한다”며 정책 일원화를 주문했다.

김지현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