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이 상반기 실적 목표 미달
불확실한 경영환경에 몸 사려
무선통신 장비 제조 중소기업 A사는 최근 국내 공장 일부를 정리하기로 했다. 우수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유명 업체에 납품하며 승승장구하던 A사는 세계적인 경기 불황으로 인해 최근 몇 년간 적자를 냈다. 처음엔 투자를 확대해 경쟁력을 높이려 했지만 금융기관의 자금 상환 압박에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진 A사는 결국 베트남으로 거점을 옮기기로 했다. 베트남은 인건비도 싸고, 정부가 외국 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각종 지원도 펴고 있어 한국보다 경영 환경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A사 관계자는 “지난해 연구개발(R&D)에 400억원을 투자한 탓에 재무제표상으로는 수백억원대의 적자를 냈는데, 금융권이 이 지표만 보고 채권을 회수하기 위해 계속 압박한다”며 “더 이상 투자할 마음이 사라져 떠날 수 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A사처럼 국내 기업들은 불투명한 경영 환경에 점점 움츠러들고 있다. 이 같은 기업들의 경영 위축은 고스란히 실적에도 반영되고 있다.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경영환경 실적 및 전망’을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상반기 경영실적이 연초 목표치에 미달했다고 응답한 기업이 절반(41.7%)에 가까웠다. 기업들의 하반기 경영전략도 ‘R&D 투자 등 성장잠재력 확충’(12.4%) 보다는 ‘경영내실화’(56.0%)에 치우쳐 있다.
이처럼 기업들이 투자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며 투자 관련 지표도 저조한 모습이다. 이날 발표된 통계청 7월 산업활동동향에서 설비투자는 6월보다 11.6%,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12.3% 급감했다. 특히 개별소비세 감면 종료의 영향으로 자동차가 포함된 운송장비 설비투자는 6월에 비해 31.5%(전년동월비 14.9%)나 줄었다. 기계류 설비투자 역시 전달보다 0.2%(전년동월비 11.2%) 줄었다.
한국은행이 이날 발표한 기업경기실사지수(BSI)에서도 기업들이 경기전망을 어둡게 보고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 이달 제조업 업황 BSI는 71로 전월보다 1포인트 하락했는데, 이 수치가 떨어진 것은 올해 2월(65→63) 이후 6개월 만이다. BSI가 100을 넘으면 경기를 좋게 보는 기업이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많다는 뜻이고, 100 미만이면 경기를 나쁘게 보는 기업이 더 많다는 의미다. 박민식 기자 bemyself@hankookilbo.com 세종=이영창 기자 anti09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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