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놓고 양ㆍ한방 갈등이 심각하다. 23일 공정거래위원회는 우월적 지위를 남용한 불공정 거래 혐의로 대한의사협회에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의사 단체가 한의사에게 초음파 진단기를 팔지 말도록 의료기기 업체에 압력을 넣는가 하면, 진단검사 기관에는 한의사가 요청한 혈액검사에 응하지 말 것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 사용은 여전히 논란이고 판례도 엇갈리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한의사도 연구 임상용으로 의료기기를 쓸 수 있으며 의사 단체가 구입을 막을 권한도 없다.
현대 의료기기가 양방의 원리를 토대로 개발됐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서양의학을 교육받은 의사만 독점적으로 쓰는 게 옳다는 의사단체의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X레이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등 현대 의료기기는 자연과학과 공학이 성취한 다양한 기술의 결합체로 봐야 한다. 교육 및 실습 과정에서 판독 능력을 충분히 길렀다면 의료법상 의료인인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을 제한할 명분이 없다. 정부가 2014년 규제완화 차원에서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확대 방침을 정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하지만 2년이 넘도록 의사와 한의사 단체 간 불협화음만 커질 뿐 정부는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두 전문가 집단이 스스로 갈등을 풀어 낼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그렇다면 두 단체와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논의기구를 만들어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정진엽 복지부 장관도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서 “국민이 참여하는 모임을 통해 해결점을 찾아보고, 의견 차이를 좁혀 합의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의 65~88%가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을 지지한다. 한의대 교육ㆍ수련 과정에 영상진단학 방사선학 등이 포함돼 있는 데다 한의사의 과학적 진단장비 활용이 국민 편익과 건강 증진에 도움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정부는 국민이 더 이상 두 단체 간 직역 다툼의 희생자가 되지 않도록 신속히 논의기구를 출범시켜 한의사의 의료기기 허용 범위를 정해줘야 한다. 필요하다면 의사 집단의 의심을 해소할 수 있도록 한의대 교육ㆍ수련 과정과 국가고시 제도를 보완하는 방안도 검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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