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조지 카치아피카스 교수, 亞 9개국 혁명 분석한 책 출간
21일 광주 명예시민증 받아
“21세기 아시아 휩쓴 봉기와 정치 격변 근원에 광주민중봉기가 있었다. 광주는 20세기의 파리코뮌이며, 민중의 저항과 자치 역량의 세계사적 정점이다. … 광주의 자랑스런 피플파워는 (아시아) 활동가들에게 영감을 줬다. 1989년 톈안먼 광장에서 활동가 주위에 집결한 중국 시민들은 광주와 마닐라에서 벌어진 민중의 저항을 잘 알고 있었다.”
현대사에서 민중의 봉기(Uprising)가 끼친 영향을 연구해 온 미국 사회정치학자 조지 카치아피카스
웬트워스공대 교수가 쓴 5ㆍ18민주화운동 평가는 찬가에 가깝다. 그는 1999년 68혁명의 가치를 분석한 저서 ‘신좌파의 상상력’ 한국어판 출간을 계기로 한국을 첫 방문한 이후, 5ㆍ18 정신에 매료돼 그간 서구에서 주목 받지 못했던 아시아의 민중봉기, 특히 5ㆍ18 연구를 결심했다.
그 결실인 2011년 저작 ‘아시아의 알려지지 않은 민중봉기’가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2001년부터 3년간 전남대 5.18연구소 객원교수로, 2007년 풀브라이트재단 후원 연구자로, 2009년 안식년을 맞아 광주에 머무르며 한국 학자 및 사회활동가 100여명을 면담한 5ㆍ18 연구내용과 아시아 현대사를 아우른 책이다. 약 700쪽에 걸쳐 1894년 농민전쟁부터 2008년 촛불시위까지 한국 풀뿌리 민중 운동사를 집대성한 ‘한국의 민중봉기’와 800쪽 분량으로 필리핀 미얀마 등 아시아 9개국 혁명의 물결을 분석한 ‘아시아의 민중봉기’의 2권으로 구성된다.
카치아피카스는 “자발적으로 결성된 그룹들이 모든 봉사를 조직하고, 사전 계획도 없이 도청 주위로 모인 사람들이 의견을 나눈” 광주가 “우리가 보통 꿈만 꾸는 방식으로” 서로 자유롭게 협력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그는 사회철학자 마르쿠제의 ‘에로스’를 차용해 자신이 체계화한 ‘에로스 효과’의 이상을 5ㆍ18에서 발견했다. 에로스 효과란 특정한 지도자나 조직의 이성적 동원 없이 민중이 스스로 역사를 바꿔야 하고, 바꿀 수 있다는 직관적, 감정적 믿음으로 일시에 봉기하는 현상을 말한다. 그는 5ㆍ18에 대해 정치학자 최정운 서울대 교수가 명명한 ‘절대공동체’와 자신의 에로스효과 개념의 지향점이 “놀랄 만큼 비슷하다”고 감탄한다.
또 5ㆍ18을 비롯한 남한의 사회운동이 아시아 전역에서 독재에 저항하는 봉기의 모델이 됐다고 봤다. 광주민중봉기가 “(냉전을 종식시킨) 동유럽 봉기보다 앞서 일어났고 세계 지도자들의 결정으로 이뤄진 것도 아니었다”며 “파리코뮌을 넘어서는 자기통치 역량과 독자성”이 여타 아시아 국가 봉기의 전범이 됐다는 것이다.
책은 장장 120여쪽에 걸쳐 5ㆍ18을 기록하고 불러낸다. 영어권에 소개된 유력한 한국역사서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 현대사’는 5ㆍ18에 대해 약 1쪽, 6월항쟁에 대해 약 한 단락을 할애한다.
그는 또 5ㆍ18 진압에서 암묵적으로 전두환을 사주한 미국정부의 행태, 효순이 미선이 사건에 대한 미군의 대처, 친미 정권으로 분류된 이명박에 대한 집회 시위 등을 집중적으로 다뤄 한국적 반미정서의 뿌리와 그 합당성을 언급하기도 한다.
그는 아시아를 휩쓴 봉기가 “1986~1992년 6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9개국 중 8개국에서 독재의 종식을 이룬 뚜렷한 궤적”을 지닌다고 높이 평가하면서도 그 명확한 한계를 지적한다. 기존 체제의 정부, 엘리트, 부자, 권력자가 이 봉기의 물결에 올라타 이권을 취했다는 것이다. 아시아에 국한된 현상은 아니나 민주화 이후 선출된 행정부가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 수입에 적극 나서 민생을 어렵게 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세계 체제 변혁을 위한 가장 강력한 고리로 여전히 봉기를 통한 “정치의 전복”을 논한다. “이제껏 이어온 경제 정치 구조의 점진적 진화를 통해 변화가 이뤄질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의 주장에 힘을 보태든 반박하든 이를 토대로 변화를 위한 효과적 수단을 고민하고 토론하는 것은 학계와 독자에게 남겨진 몫이다.
2005년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고 신은정씨와 결혼했다 2012년 사별한 카치아피카스는 5ㆍ18을 연구해 온 공로로 21일 아내의 고향 광주시에서 명예시민증을 받는다. 그는 앞서 2010년 ‘오월어머니상’을 받기도 했다.
연구 중 거울에 자신의 얼굴이 한국인으로 비치는 꿈을 꾸기도 했다는 그는 우리의 과제에 대해 이렇게 썼다. “피로 물든 한국의 20세기 가장 중요한 산물 하나는 민중 자신의 힘에 대한 믿음이다. 의지를 동원할 수 있다면 한국인들은 21세기에 결국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한국인들은 우리 모두의 품격을 높일 것이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