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소년’ 송유근 군이 미국천문학회에서 발행하는 국제학술지 ‘천체물리학저널’에 게재한 논문이 취소됐다. 미국천문학회는 “송군과 지도교수인 한국천문연구원(KASI) 박석재 연구위원이 공동저자로 참여한 이번 논문이 2002년 박 연구위원이 학회에 발표했던 자료와 대부분 겹치는데도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고 논문 철회 이유를 밝혔다. 송군의 국내 최연소 박사학위 취득이 무산된 사실보다 여전히 뒤떨어진 국내 연구윤리 수준이 드러났다는 점에서 더욱 실망스럽다.
박 연구위원이 자신이 학회에서 발표한 자료를 인용사실을 밝히지 않은 채 논문에 옮긴 것은 명백한 ‘자기 표절’이다. 2011년 교육과학기술부가 개정한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에는 자기표절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일반화 된 상식 수준의 기준이다.
박 연구위원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표절 논란이 확산되자 “발표 자료는 논문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며 반박했다.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서 “왜 매도를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 유근이가 칼 도마에 올라간 느낌”이라고까지 했다. 그러다 논문이 취소된 후에는 “저널의 결정을 수긍한다. 내 불찰이었다”고 밝혔다. 그의 말대로 연구윤리 부정에 해당된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단순한 불찰이 아니라 학자로서의 기본적인 자질 부족이다. 만약 규정을 알고도 표절을 감행했다면 당연히 중징계 대상이다. 어느 경우든 연구자로서는 용납이 되지 않는 행위다.
문제는 이 경우만이 아니라 적지 않은 국내 학자들의 연구윤리 인식이 제대로 정립돼있지 않다는 데 있다. 서울교대 연구팀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대학 소속 연구자 중 절반 이상이 매년 연구 부정행위를 최소 한 차례 이상 저지르고 있다고 응답했다. 연구윤리가 연구를 수행하는 데 중요한 기준인지를 묻는 질문에 대학 연구자의 45.3%만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절반 가량이 논문이나 보고서를 작성할 때 연구 윤리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최근 남의 책의 표지만 바꿔 자기 이름으로 저서를 내는 ‘표지갈이’ 수법으로 전공 서적을 출간하거나 묵인한 대학교수 200여 명이 무더기로 검찰에 적발된 것은 윤리 불감증의 극치다. 학계에 만연한 연구윤리에 대한 무지와 무책임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국내 대학 10곳 중 9곳은 자체 연구윤리 규정과 지침을 두고 있지만 무용지물이다. 대학과 연구기관에서 자체 윤리규정을 위반한 사례가 매년 수십 건이지만 처벌은 솜방망이다. 중대한 연구윤리 위반자는 학계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강력히 처벌해야 나쁜 관행이 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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