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식
주필

등록 : 2014.11.20 17:46
수정 : 2014.11.20 21:58

[황영식의 세상만사] 로비를 허(許)하자

등록 : 2014.11.20 17:46
수정 : 2014.11.20 21:58

끊이지 않는 ‘후원금 쪼개기’의혹 사건

야당의 불만과 무관하게 공정성 의문 남아

정치자금과 법안 심의 내역 함께 밝히자

연말이면 문자메시지나 SNS를 통해 정치후원금 기부 안내가 날아든다. 성가실 수는 있어도 해로울 건 없다.

10만원 이하의 정치자금 기부는 조세특례제한법 규정에 따라 세액공제 형태로 전액 돌려 받는다. 2007년 개정법 시행 전까지는 10%의 덤까지 얹혔다. 깨끗한 정치의 초석으로 기대됐던 소액 기부가 저조한 데 따른 궁여지책이다. 해가 가도록 후원금이 1억5,000만원(선거 해는 3억원) 한도에 못 미치는 국회의원들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 후원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도 수천만원을 모을 수 있다.

어느 국회의원에게 수백만~수천만원의 후원금이 밀려 들어온다. 며칠 뒤 어떤 이익단체나 법인 관계자가 넌지시 후원금을 잘게 쪼개 넣은 사실을 알리며 국회가 심의 중인 법안에 대한 ‘희망’을 피력한다. 사전에 일정한 후원금을 약속하며 ‘협조’를 요청하기도 한다. 소속 상임위 소관 법안은 말할 것도 없다. 개인적 친분이나 당내 역할 분담의 결과 입김이 미칠 만한 동료의원이 속한 상임위 소관 법안까지도 표적이 된다.

이런 ‘후원금 쪼개기’ 수법의 직접적 배경은 법인이나 단체의 정치후원금 기부를 금지한 정치자금법 31조다. 법인이나 단체가 곧바로 후원금을 기부할 수 없다 보니 택한 우회로인 셈이다. 위험부담은 크다. 10만원씩 쪼개다 보니 관련자가 많다. 500만원을 쪼개면 50명이고, 1,000만원이 넘으면 100명이 넘는다. 인사 불만을 비롯한 내부 갈등이 언제든 ‘내부고발’로 이어질 수 있다.

야당 의원에 집중되는 것도 공교롭다. 야당은 돈줄이 가늘다. 여당 의원은 정부 방침을 존중해야 하는 처지라서 ‘후원금 쪼개기’ 방식의 입법로비가 겨냥하는 방향과는 어긋나기 쉽다. 여당의원, 특히 정치 실력자에 대한 입법로비는 주로 ‘차명 후원’ 방식으로 이뤄진다고 한다. 정치자금법상 개인의 연간 후원금 기부 한도는 2,000만원이다. 중앙당 전당대회 경선후보자나 대통령후보자에게는 각 1,000만원, 국회의원에게는 500만원을 후원할 수 있다. 10명만 동원하면 4명의 국회의원에게 5,000만원씩을 몰아줄 수 있다. 임원만 수백명인 대기업이라면 미리 후원금을 급여에 얹어줄 수 있다. 임원 개인의 명의로 후원하되, 실제 주체는 대기업 본체나 그 총수다. ‘오너 충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기업풍토에 비추어 좀처럼 탄로나지도 않는다.

‘후원금 쪼개기’에 대한 검찰의 수사 재량권이 커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제공자의 혐의를 밝히기는 쉽지만 후원금을 받은 국회의원의 혐의를 찾기는 쉽지 않다. 최소한 제공자의 의도를 알고 있었다는 단서를 확보해야 하는데 쉽지 않은 모양이다. 같은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처럼 보여도 기소는커녕 입건조차 못하는 예가 있다 보니, 야당만 죽이려고 든다는 불만이 터지기 십상이다.

도둑놈이 자기보다 큰 도둑인데도 법망을 피한 사람이 많다는 항변으로 책임을 덜 수는 없다. 같은 도둑끼리 비교하면 억울할지 몰라도, 일반인과는 비교가 안 된다. 그러나 눈을 조금 크게 뜨면, ‘차명 후원’은 밝히지 못하면서 ‘후원금 쪼개기’만 닦달하려는 것은 어쩐지 불공정하다. 과거의 ‘사과상자’나 ‘굴비상자’ 사건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엄격한 요건 아래 단체나 법인의 정치자금 기부를 허용하면 ‘후원금 쪼개기’는 불필요해진다. 대신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자는 오랜 취지가 무색하다. 무엇보다 법제를 어떻게 정비하든, 입법 시장에 수요ㆍ공급이 존재하는 한 한결 교묘한 수법만 부르게 마련이다.

정치자금 규제가 정치권의 해묵은 과제인 깨끗한 정치를 위한 것이라면, 미국처럼 아예 입법로비를 허용하되 그 결과를 낱낱이 공개하도록 하는 것이 낫다. 이익단체나 법인의 이해가 어느 의원을 통해 어떻게 반영됐는지가 공개된다면 나중에 유권자의 정치적 판단에도 적잖이 도움이 된다. ‘로비’라면 무조건 검은 돈을 떠올리는 국민적 인식에 변화가 와야 한다. 최소한 검은 돈의 출처와 경로라도 드러나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러니 입법로비와 전문기업인 로비회사(로비펌)의 설립을 허하자. 국회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이다.

논설실장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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