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에 당한 피해자가 자신의 경험을 공개하는 ‘미투’가 이슬람 세계로도 번지고 있다. 진원지는 이슬람교 최대 성지인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의 카바 신전이다.
9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과 일간 더타임스 등은 이슬람교를 믿는 여성들 사이에서 메카 성지순례 ‘하즈’를 비롯해 신앙 생활 도중 성추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는 여성들이 해시태그 ‘모스크미투’(#MosqueMeToo)를 붙여 피해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 언론에 따르면 파키스탄 출신 여성 사비카 칸은 2일 페이스북을 통해 타와프(카바 신전 주위를 도는 의식) 도중 한 남성이 자신의 몸을 지속적으로 만졌으며 “성지순례가 끔찍한 경험으로 뒤덮였다”고 말했다. 이 페이스북 포스팅이 2,000회 이상 공유된 이후 칸은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닫았지만, 유사한 증언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타와프는 엄숙한 분위기 속에 진행되는 행사지만 순례객들이 많이 몰려 들기에 성추행 범죄도 빈발한다는 것이 피해 여성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이를 본 이집트의 언론인 모나 엘타하위는 지난 6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처음으로 해시태그 ‘모스크미투’의 사용을 제안했다. 그는 “나는 1982년, 15세 때 하지 도중 성적 괴롭힘을 당했다”고 공개하고 “무슬림 여성들이 하즈(의무적 성지순례)와 움라(의무가 아닌 성지순례)를 비롯해 신앙활동 도중 성폭력을 당했을 때 침묵을 깨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적었다.
메카 성지순례를 의미하는 ‘하즈’는 이슬람교의 5대 기둥 중 하나로, 무슬림은 몸과 정신이 건강하고 재력이 뒷받침된다면 일생에 한 번 이슬람력 12월에 메카를 방문할 의무가 있다. 연간 최소 200만명이 성지순례를 위해 메카를 방문한다. 종교적인 기본 의무이자 가장 엄숙해야 할 행사 도중에도 여성들이 성적 괴롭힘의 표적이 된다는 점 때문에 ‘모스크미투’는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여성에게 히잡 등 단정한 옷차림을 의무화하는 이슬람 문화에도 최근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여성이 아무리 단정한 옷을 입더라도 성폭력 피해자 처지에 놓이는 것은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연초 반정부 시위가 대대적으로 벌어진 이란에서는 히잡 착용을 의무화하는 법에 반대해 막대 위에 히잡을 걸어놓고 길거리에 서 있는 1인 시위가 유행했다. 지금까지 이 시위에 참여한 29명이 체포됐지만 더 많은 이들이 시위에 동참하고 있다. 최근 이란 당국이 히잡 미착용에 대해 즉각 체포 대신 계도로 대응 수위를 낮춘 것도 시위 확산에 영향을 미쳤다.
여성 복장에 대해서 이란보다 더 보수적으로, 얼굴을 제외한 목부터 발끝까지 몸을 가리는 ‘아바야’를 강제하는 사우디에서도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9일 최고종교기관인 원로종교위원회의 셰이크 압둘라 알무틀라크는 “이슬람권에서 신실한 무슬림 여성 가운데 90%가 아바야를 입지 않는다. 사우디도 여성에게 아바야를 강요해선 안 된다”고 발언했다. 최고 원로 성직자의 발언은 복식 관련 법률을 바꾸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주목을 받고 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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