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신고자보호법 유명무실
2013년 내부고발자 중 절반
해임 등 신분상 불이익 당해
신고자 복직 사례는 13건뿐
공익신고 접수 급증하지만…
익명성 보장 안돼 신분 노출
고발한 조직서 소송 걸기도
“법적 보호 가능하게 개선을”
서울 동구마케팅고 국어교사 안종훈(43)씨는 지난해 5월부터 지금껏 단 한 시간의 수업도 배정받지 못했다. 핍박은 2012년 4월 안씨가 학교재단 인사의 횡령 정황을 서울시교육청에 신고하면서 시작됐다. 학교 측의 보복은 가혹했다. 이듬해 교문지도를 불성실하게 했다며 그를 해고한 학교는 “해직이 부당하다”는 교원소청심사위원회 결정에도 불구, 지난해 세월호 관련 집회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다시 파면시켰다. 소송을 통해 파면조치가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고 올해 복직했지만 그는 여전히 ‘왕따’였다. 학교는 안씨의 자리를 따로 배치하고 수업 대신 ‘새로운 교육학습 방법을 발굴해 보고하라’는 과제를 내줬다. 그는 지난해부터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으나 신고 내용이 사립학교 내부 비리여서 정부가 마련한 ‘공익신고자보호법’에 기댈 수도 없다. 안씨는 28일 “치료와 소송 비용을 모두 자비로 부담해야 하는데다 신분 상 불이익을 토로할 창구도 마땅치 않다”고 털어놨다.
공익제보를 장려할 목적으로 정부가 2011년 도입한 공익신고자보호법이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 비밀보장이라는 최소한의 원칙마저 지켜지지 않는 탓에 내부고발자들은 소속된 조직의 비난과 보복인사, 소송 등에 따른 생계 곤란에 시달리고 있다.
내부고발자들이 지적하는 공익신고의 가장 큰 맹점은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안씨 역시 제보 과정에서 신분이 노출됐다. 시교육청 감사가 나오자마자 안씨가 ‘범인’으로 지목됐다. 학교 측은 “교육청 감사에서 고발자를 파악했다”며 안씨를 압박했다. 그는 “익명신고 제도가 마련되지 않으면 신고자 신원이 언제든 노출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신분이 노출된 내부고발자들에겐 곧이어 경제적 위기가 닥친다. 2009년 전북 군산의 한 공사현장에서 감리단장으로 일하다 시공사의 부당 설계변경을 고발한 유영호(56)씨는 소신을 지킨 결과 7년째 무직으로 지내고 있다. 감리업체에 단단히 미운털이 박혀 관련 업체들의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랐기 때문이다. 감리업체는 유씨가 ‘청렴 의무’를 위반했다며 전국의 감리 업체에 공문을 뿌렸다. 이후 유씨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이에 더해 시공사는 유명 로펌을 앞세워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유씨는 “감리단장으로서 잘못된 시공을 지적하는 건 당연했고, 지금도 내 행동을 후회하지는 않는다”면서도 “나처럼 내부 고발을 하라고 권유하고 싶진 않다”고 털어놨다. 내부고발자가 되기 전까지 월 300만~500만원 정도를 벌면서 안정적으로 살아오던 그는 지금은 소송 비용까지 부담하느라 친인척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 상황이다. 유씨는 “어려워진 형편 때문에 가사도우미로 일하면서 나 대신 고생하는 아내를 보면 감사하고 또 미안하다”고 말했다.
공익 제보자를 지원하는 시민단체 호루라기재단이 2013년 내부고발자 42명을 심층 조사한 결과, 절반이 넘는 25명이 제보 이후 파면ㆍ해임 조치 등 신분상 불이익을 당했다. 28명은 공익신고 후 생계유지가 어렵거나 배우자의 수입으로 근근이 살아간다고 답했다. 반면 같은 해 국민권익위원회의 공공기관 공익신고자 보호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1,305건의 신고 중 해임된 신고자를 복직시킨 사례는 13건에 그쳤다. 공익제보자나 그 친족이 신고 이후 육체적ㆍ정신적 피해를 입었을 경우 치료비용과 원상회복 관련 쟁송 절차에 소요된 비용 등을 신청하는 제도도 있지만 구조금이 지급된 사례는 극히 드물다. 공익신고 접수 건수는 2012년 1,152건에서 지난해(11월 기준) 5,422건으로 대폭 늘었으나 권익위가 구조금을 지급한 것은 2012년 1건, 2014년 1건, 올해 2건 등 4건뿐이다. 이지문 호루라기재단 상임이사는 “공익신고자보호법 제정을 계기로 우리나라도 공익신고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으나 여전히 신고자 보호와 보상 부분에서 미흡한 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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