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 변칙 연발해도 이기는 바둑
‘악수’ 인식 재검토해야 할 판
이세돌, 전날과 달리 너무 침착
공격할 흐름서도 못 치고 나가
‘인간계’ 바둑 세계 최강 이세돌(33) 9단이 인공지능 알파고에 이틀 연속 무릎을 꿇자 프로기사들은 예상치 못한 결과에 당황한 표정과 목소리가 역력했다. 전날 제1국에서 186수 만에 불계패했던 이 9단은 10일 열린 제2국에서도 초읽기에 몰린 뒤 211수 만에 결국 돌을 던지고 말았다. 대국 전“이세돌 9단이 알파고 분석을 마쳤을 것이다. 긴장을 풀고 임하면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던 프로기사들은 알파고의 무궁무진한 수에 혀를 내두르는 모습이었다.
1국에서 “이세돌 답지 않았다”는 평이 주를 이뤘다면 이날은 이세돌의 수가 전혀 미치지 못했다”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한국 바둑의 본산 한국기원 관계자는 “모두가 이 9단의 승리를 의심치 않았는데 이런 결과에 충격을 받았다”며 “직원들이 일도 못할 정도로 침울해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알파고의 바둑을 이해할 수 없다”“인간 바둑에선 처음 나온 수” 라는 반응도 줄을 이었다. “실수가 없었던 이세돌이 오히려 실수와 변칙을 연발한 알파고에 무너졌다”라는 뼈아픈 평가도 나왔다. 실제 알파고는 예상을 뛰어넘는 변칙 수를 놓고, 싸움을 거는 등 도발적인 바둑을 뒀다.
프로 기사들은 수시로 탄성과 함께“인간이 둘 수 있는 수가 아니다”는 말을 내뱉었다. 바둑TV 해설위원을 맡은 김성룡 9단은 “알파고가 놓는 수를 이상하다고 표현하기보다 인간이 기존에 알던 수가 아니다”고 말했다.
알파고는 15수에서 상식을 벗어난 수를 뒀다. 프로바둑에선 ‘악수’(惡手)로 여기는 수다. 김성룡 9단은 “이런 수를 두고도 알파고가 이긴다면 혁명”이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여전히 이 9단의 실수를 지적했다. 양재호(9단) 한국기원 사무총장은 “이 9단이 오늘은 너무 침착했다. 공격적으로 가야 할 흐름에서도 섣불리 치고 나가지 못한 반면 알파고는 철저하게 ‘이기는 바둑’으로 응수했다”면서 “알파고의 바둑 스타일을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 난관이지만 이 9단이 정상적인 모습만 보인다면 3국부터 기대해도 좋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세돌 9단의 스승인 권갑용 8단은 “이 대국은 이세돌 9단의 개인으로서도 중요하지만, 인간과 기계, 바둑과 기계의 싸움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바둑에는 인간이 접할 수 없는 영역이 있는데, 기계가 그 영역에 들어가는 것일까”라며 “바둑의 신비가 사라질까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중국의 커제 9단은 이세돌의 10일 대국에 대해 “절망을 느낀다”고 말했다. 중국 써우후(搜狐)신문은 커제가 이세돌과 알파고의 2번째 대국이 끝난 뒤 “이세돌이 0-5로 질 수도 있을 것”이라면서 이같이 밝혔다고 보도했다. 이세돌의 패배로 대국이 마무리되자 그는 “이세돌이 이런 마음 상태로 바둑을 둔다면 몇 번을 둔들 질 것”이라면서 “평소 이세돌은 매우 강한데 오늘은 매우 괴로운 표정이었다”고 덧붙였다. 이어 “오늘 패배는 처참했고 따분했다”면서 “그를 응원했는데 이제는 야유한다. 인류 바둑기사의 대표 자격이 없다”고 실망감을 쏟아냈다.
성환희기자 hhsung@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