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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생산성 혁신 없는 근로시간 단축은 허구다

입력
2018.03.06 14:1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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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인상에 한숨을 돌리기도 전에 이번에는 개정 근로기준법이 기업들을 압박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은 기본적 방향에 있어서는 바람직한 정책이다. 저소득 근로자들도 가족들과 넉넉한 저녁을 함께할 수 있을 만한 임금과 시간을 제도적으로 보장한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근로시간 단축은 국민 삶의 질을 폭 넓게 개선한다는 점에서 ‘참 좋은 정책’이라고 할 만하다.

이렇게 좋은 정책을 왜 지금까지 추진하지 못했는가?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또 그 이유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문재인 정부의 좋은 정책 역시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다. 최저임금 인상률이 낮은 수준을 유지했던 이유는 저임금 근로자들을 다수 고용하는 산업이 구조적으로 저수익성과 저생산성 문제를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만성적으로 과도한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문제는 기업 입장에서는 추가로 발생하는 노동비용의 부담으로 인하여, 근로자의 입장에서는 임금 감소에 대한 우려로 인하여 노사 간 합의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마땅한 합의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과도한 근로시간의 문제를 그 동안의 ‘기업 비용과 근로자의 임금’ 문제에서 ‘근로자 삶의 질 개선’ 문제로 프레임을 바꿈으로써 법 개정을 단행했다. 하지만 여전히 기업의 부담과 근로자들의 우려는 변한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7월 실시를 앞두고 지금도 혼란에 빠져 있다. 아무리 여건이 좋은 대기업이라 할지라도 불과 4개월을 앞두고 노동 투입 시스템을 제대로 전면 개편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지금까지 낮은 최저임금과 과도한 근로시간을 지속시켜 온 구조적 요인에 대한 근본적 개선 없이 법과 행정력으로 사업체를 압박하기만 한다면, 그 결과는 시장의 사업의욕을 더욱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무엇보다 크게 우려된다. 대표적으로 부가가치 생산성이 낮은 산업인 음식숙박업의 경우 2013년 대비 2017년 시장규모는 6.8% 증가에 그친 반면에 고용 인원은 15.3%가 증가했으며, 그 결과로 임시일용 종사자의 임금은 2.9%밖에 오르지 않았다. 특히 음식점업의 경우 같은 기간에 업체 수는 9%가 증가했으며, 노동생산성은 지난 5년간 거의 변화가 없었다. 이런 상황의 사업체들에게 정부는 무엇을 가지고 임금을 올리고 근무시간을 단축하라는 것인가?

정부도 이런 실정을 감안해 5인 미만 영세사업장에 대해서는 근로시간 단축 의무에서 제외하고,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은 2021년 7월부터로 시행을 유예하고 있다. 그러나 이대로 간다면 3년 후라고 해서 문제가 달라질 게 별로 없다. 더구나 임금과 근로조건이 가장 열악한 5인 이하 사업장 근로자들의 삶의 질 문제는 언제까지 외면할 것인가? 정부가 영세 사업장들의 저생산성과 근로시간의 경직성 및 복잡한 임금구조 등 근본문제에 대해 기업과 근로자들이 수긍하고 따라갈 만한 정책 프로그램을 제시해야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풀린다.

저부가가치로 인한 저수익성이 저임금과 과도한 근로시간을 초래하는 사업구조가 개선되지 않는 한 정부의 최저임금 대폭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은 ‘폭탄 돌리기’와 다름이 없다. 즉 정부는 구조적인 문제 해결을 외면한 채 법 개정으로 부담을 사업체들에게 떠넘기고 있다. 생산성 혁신이 없는 임금 인상이나 근로시간 단축은 허구에 불과하고, 결국 그 폭탄의 최종 희생자는 일자리를 필요로 하는 저소득 근로자들이 될 우려가 있다.

정부는 ‘좋은 정책’이라는 이유로 기업들을 일방적으로 압박할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라도 사업체들과 머리를 맞대고 사업장들의 생산성 혁신과 근로의 유연성 제고를 위한 납득할 만한 구체적 정책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사업장들의 참여를 유도해야 마땅하다.

김동원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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