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의 20대 총선 공천은 유승민 논란으로 시작해서 유승민 논란으로 끝났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이한구 위원장 등 친박계가 주도하는 공천관리위원회는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배신의 정치’낙인이 찍힌 유 의원을 공천할 생각이 애초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유 의원에 대한 동정 여론과 수도권 등지의 총선 악영향을 겁내 후보등록 전날까지로 결정을 미루면서 유 의원 스스로 탈당 등의 결단을 내리라고 압박해왔다. 공당으로서 참으로 무책임하고 비겁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특히 공관위와 최고위원회의가‘폭탄 돌리기’라도 하듯이 유 의원 공천 문제를 서로 떠 넘기기로 일관한 것은 책임 회피의 극치다. 역풍을 우려해 뒤늦게 유 의원을 단수 추천하자니 배신의 정치 심판을 강조한 박 대통령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 된다. 그 부담을 누구도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모양이다. 후보 등록 하루 전인 23일까지도 가부 결론을 안 내면 유 의원은 후보등록기간에는 당적 변경을 금지한 규정상 무소속으로도 출마가 불가능해진다. 결국 스스로 탈당해 무소속 출마를 하든지 말든지 하라는 것이다. 당내에서는“어쩌다 공당이 이 지경까지 망가졌느냐”는 한탄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정당이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와 정해진 기준에 따라 공직후보자를 추천하는 과정이 공천이다. 그러나 이번 새누리당의 공천은 공정과 투명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직 대통령의 눈 밖에 났는지 아닌지 여부가 가장 중요한 잣대였다. 정체성을 문제 삼기도 했지만 유 의원이 새누리당의 보수 정체성에서 크게 벗어났다고 볼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데도 집요하게 정체성 문제를 늘어진 이유는 분명하다. 대통령에 대들었던 그를 어떻게든 쳐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화 시대에 대통령을 일사불란하게 따르는 것을 여당 정체성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퇴행도 이런 퇴행이 없다.
결국 이한구 공관위는 이번 총선을 통해 자신의 독자적 원칙과 철학 없이 청와대의 지시에 순순히 따르는 의원들로 물갈이하겠다는 뜻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셈이 됐다. 청와대, 즉 박 대통령의 뜻이 깊숙이 개입되지 않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는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는 오만이다. 친유승민계 등 비박계 현역들을 줄줄이 컷 오프시킨 ‘3ㆍ15 학살’이후 이른바 ‘진박’ 후보들이 여론조사 경선에서 줄줄이 패배했다. 박 대통령의 영향력이 막대한 대구 지역에서조차 반발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앞뒤 안 가리고 대통령만 쳐다 본 공천에 대한 민심의 역풍이 심상치 않다는 증거다.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린다면 결국 국민들이 표로 심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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