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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 시비일면 작가는 버티기 출판사는 감싸기… 폭로자가 되레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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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 시비일면 작가는 버티기 출판사는 감싸기… 폭로자가 되레 피해

입력
2015.06.1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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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 타거나 "필사 습관 때문에…"

잠잠해지면 다시 작품 내고 활동

소재 차용 불거진 문학상 수상작

"표절 아니다" 수상 취소 안 하기도

신경숙 소설가 표절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신씨의 작품들이 18일 서울시내 한 서점에 진열돼 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신경숙 소설가 표절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신씨의 작품들이 18일 서울시내 한 서점에 진열돼 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200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천운영 작가의 ‘바늘’은 이번 신경숙씨가 표절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미시마 유키오의 다른 소설 ‘금각사’와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그러나 평단이 천씨의 작품에 극찬을 보내면서 표절 시비는 이내 사라졌고, 작가는 아무 제약 없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천씨는 2005년 인터뷰에서 표절 시비에 대해 “습작 시절 필사를 종종 하곤 했는데 문장에 있어서 그런 부분들이 부지불식간에 일어났다”며 “신중치 못했다는 건 인정하지만 전체가 표절이라고 하는 건 좀 그렇다”는 입장을 밝혔다. 어쩌다 문장이 일치했을 수 있겠지만 의도적으로 베낀 건 아니라는 뜻으로, 작가로서의 책임이나 반성의 목소리는 찾아볼 수 없다.

?신경숙 작가의 표절 논란으로 인해 문단의 자정능력이 다시금 도마 위에 올랐다. 과거에도 표절 의혹이 제기된 적은 많았지만 의혹을 받은 당사자보다 문제를 제기한 쪽이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표절을 적발하고 비판해야 할 비평가, 작가, 출판사, 언론이 오히려 표절 작가를 싸고 돌거나 침묵한 결과다. 신경숙 작가의 표절 의혹을 제기한 소설가 이응준씨가 언급한 ‘침묵의 카르텔’은 어떤 식으로 형성되고 유지되는가.

2000년 김윤식 서울대 교수의 가라타니 고진 표절 사건은 한국 문학비평의 거장에 대해 피라미 같은 대학원생이 표절을 고발한 사례다. 당시 새파란 대학원생이던 이명원씨는 서울시립대 학술지에 게재한 논문에서 김 교수가 4쪽에 걸쳐 가라타니의 ‘일본 근대 문학의 기원’을 완벽하게 표절했다고 폭로했다. 김윤식 교수는 “지적한 대로 가라타니의 글 일부가 내 글에 그대로 옮겨졌다. 이는 내 실수”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피해자는 문제를 제기한 대학원생이었다. 이씨는 대학원을 중도에 포기했다. 정확한 중퇴 사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김 교수 사단이 자신들의 스승을 흠집 낸 이씨에게 압력을 넣어 견디지 못한 이씨가 학교를 그만뒀다는 말이 돌았다. 이씨는 다른 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경희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1999년 신경숙씨의 표절 의혹을 처음 제기한 문학평론가 박철화씨도 한동안 괴롭힘에 시달렸다. 박씨는 신씨의 장편 ‘기차는 7시에 떠나네’와 단편 ‘작별인사’가 각각 프랑스 작가 파트릭 모디아노와 일본 작가 마루야마 겐지를 표절했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박씨의 측근인 한 문인은 “평론가들은 아무도 편들어주지 않고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이 입 다물고 있으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등 박씨가 시달림을 많이 당했다”며 “그 때 받은 상처가 커서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씨는 현재 일본에 체류 중이다.

문학상 수상작의 표절 의혹이 제기됐는데도 수상이 취소되지 않는 일도 버젓이 일어났다. 2005년 동인문학상을 받은 권지예의 소설집 ‘꽃게무덤’은 시골의사 박경철씨가 블로그에 올린 경험담을 소재로 무단 차용해 논란이 됐다. 이에 대해 권씨는 “작가들은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어 쓰기도 하고 나도 그렇게 했다”며 “다음 책을 찍을 때는 출처를 명시하겠다”고 했다. 박씨가 ‘출처 명기로 회피하기보다는 사과나 반성의 표시를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밝혔지만 이조차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정적인 문제는 동인문학상 심사위원들의 태도였다. 심사위원들은 “소재 차용일뿐 표절은 아니다”라며 상을 취소하지 않았다. 작가를 비롯한 문단의 저작권 개념이 얼마나 희미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한 평론가는 “유명한 작가들 중에는 자신이 지고 있는 책임감의 무게에 대해 인식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타인의 저작권을 침해하는 것에 대한 개념이 (문단에) 여전히 희미하다”고 지적했다.

한국 문단의 표절 문제는 지금까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일부 작가의 문제가 아니라는 시각이 많다. 신경숙 작가가 과거 필사로 문인의 꿈을 키우고, 방송작가를 하는 동안 좋은 글귀를 메모했다가 대본에 쓰는 것이 습관화된 것이 이번 표절 논란의 배경이라고 말하는 작가들이 있는데, 이조차 신씨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마치 대중 음악가들이 레퍼런스 곡들을 가져다 섞어 교묘히 표절을 피해가듯 작가들도 여기저기서 구조와 문장을 살짝 베껴 작품을 쓰는 것에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다는 것이다.

표절을 짚어내야 할 평론가들은 출판사들이 발행하는 문예지의 편집위원, 기획위원으로 활동하며 출판사 라인의 작가들을 감싸기에 급급하다. 쓴 소리 대신 해설과 찬사에 주력하는 소위 주례사비평이 그렇게 나온다. 신씨처럼 책 한 권에 수백억 원 매출이 달린 거물 작가라면 문제 삼기는 더욱 어렵다. 메이저 출판사-비평가-작가-언론의 카르텔이 이렇게 공고한 체제를 유지하는 사이 우리 문단은 자정능력도 창작의 열의도 잃어가고 있다.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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