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회사 책임 묻는 소송 139건 중 승소는 단 1건뿐
“사기 당해 정보 유출한 피해자 책임”…소송 비용도 떠안아
A씨는 2012년 9월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를 당했다. 경찰을 사칭한 범죄자는 A씨 명의의 대포통장이 범죄에 악용됐다며 “공범이 아니라면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개인정보 침해사실을 신고하라”고 부추겼다. A씨는 그가 알려준 허위 경찰청 사이트를 찾아 계좌번호와 카드 2장의 번호, 카드유효성검사코드(CVC)번호, 비밀번호 등 개인정보를 대거 입력했다. 피해를 막기 위해 취한 이 행동은 채 1시간이 지나지 않아 막대한 피해를 불렀다. 범죄자는 2개의 카드사로부터 현금서비스 대출과 카드론으로 2,400여만원을, 은행 계좌이체로 3,000여만원을 가로챘다. A씨가 알려준 정보로 공인인증서를 재발급 받아 돈을 빼돌린 것이다. A씨는 공인인증서 재발급은 접근매체(통장ㆍ카드ㆍ공인인증서 등)의 위조로, 이로 인해 발생한 사고는 금융기관에 책임이 있다고 규정한 전자금융거래법에 근거해 은행과 카드사에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의 판단은 ‘금융기관은 책임이 없다’는 것. 소송비용도 A씨의 몫이었다.
보이스피싱 등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자들이 금융회사에 피해를 막지 못한 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하고 있지만 승소할 확률은 1%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싱 피해 책임을 금융회사에 물을 수 없다는 판결이 압도적이다. 사기로 금전적 손실을 입은 피해자들은 소송 비용까지 떠안게 되면서 이중의 피해를 입고 있는 셈이다.
3일 본보가 입수한 금융감독원의 ‘전기통신금융사기 관련소송 분석 및 시사점’에 따르면 2012년 1월부터 작년 10월까지 피싱 사기 피해자가 은행 및 카드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 274건 중 판결이 최종 확정된 소송은 139건이다. 이 가운데 피해자가 금융회사로부터 승소한 건수는 단 1건(0.79%)에 불과했다. 승소 판결도 금융회사가 피해자의 휴대전화 번호를 잘못 입력하면서 송금내역이 전달되지 못한 과실이 인정된 것으로, 배상 책임은 피해액의 35%에 불과한 일부 승소다. 133건은 금융회사는 책임이 없다는 원고 패소 판결이었고, 나머지 5건은 화해권고로 손해액의 20% 정도만 배상하라는 법원의 권고를 금융회사가 수용한 것이다. 화해권고를 포함하더라도 피해자들이 소송을 통해 배상을 받은 경우는 6건(4.3%)에 불과한 셈이다.
법원은 피싱 사기 피해는 전적으로 피해자 본인의 과실로 보고 있다. 대법원이 지난 2014년 9월 사기범이 불법획득한 금융정보를 이용해 공인인증서를 재발급 받는 행위는 금융회사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전자금융거래법상 위조가 아니라고 판결한 것이 결정적이다. 현재 진행중인 130여건 소송에서도 피해자들이 구제 받을 가능성이 크지 않은 이유다.
금융회사가 이상거래탐지시스템(FDS)을 통해 사전적으로 막을 수 있었다는 피해자들의 주장도 배척됐다. “FDS는 법으로 강제된 사항이 아니고 금융거래가 대규모ㆍ실시간으로 이뤄져 금융회사가 모든 의심거래를 확인하는데 한계가 있어 금융회사에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소송을 통해 금융회사로부터 피해를 구제받기 어려움에도 일부 법조 브로커들은 피해자들에게 소송에서 이길 수 있다고 꼬드기는 실정”이라며 “소송비용 부담 등 이중 피해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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