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조철환
특파원

등록 : 2017.07.23 06:39
수정 : 2017.07.23 18:41

[특파원24시] 책 팔려면 여성인 척… 미국 문단 ‘필명 성전환’ 급증

등록 : 2017.07.23 06:39
수정 : 2017.07.23 18:41

여성 독자가 책 구매 주도… 동성 작가 선호하는 탓

남성 작가가 여성 필명으로 내놓아 미국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심리 소설. <얼음 쌍둥이>(왼쪽)과 해당 작가 숀 토마스(가운데 위쪽). <내 앞의 여자>(오른쪽)는 ‘JP 델라니’라는 필명의 남성 작가 토니 스트롱(가운데 아래쪽)의 작품이다.

‘커러, 엘리스, 액턴 벨의 시집ㆍPoems by Currer, Ellis, and Acton Bell’.

1846년 나온 시집이다. 영문학에 얼마간의 관심만 있다면, 샬럿(대표작ㆍ폭풍의 언덕)ㆍ에밀리(제인 에어)ㆍ앤 브론테 3자매가 남성 필명(筆名)으로 발표한 작품이란 사실을 알 것이다. 당시로서는 문학적 소양이나 지적 능력에 대한 잘못된 이해 때문에 미국과 영국에서도 유능한 여성 작가가 남자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하는 사례가 흔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2일(현지시간) 이제 미국 문단에서는 남녀 역전 현상이 발생, 더 많은 인기와 책이 팔리기를 기대하며 여성 필명을 내세우는 남성 작가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최근 2, 3년간 인기를 얻은 소설 중 일반 독자들이 여성 작품으로 짐작했던 것 중 상당수가 나중에 중년 남성의 저작으로 확인됐다. 2015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은 ‘얼음 쌍둥이ㆍThe Ice Twins’가 대표적이다. 여성 주인공이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내용을 이끌어갔기 때문에 누구나 작가(S.K. 트레메인)가 여성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박을 친 뒤 확인된 정체는 중년의 영국 남성작가, 숀 토머스(53)였다. 원래 ‘톰 녹스(Tom Knox)’라는 필명을 사용했으나 ‘책을 더 팔려면 작가 이름을 바꾸는 게 좋겠다’는 출판사의 요구로 필명까지 바꾼 것이다.

이미 오래전 성 정체성이 공개됐는데도, 여성 이름으로 작품을 내는 작가도 많다. 올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내 앞의 여자ㆍThe Girl Before’를 지은 ‘JP 델라니’도 실제로는 토니 스트롱이라는 남성이다. 토니 스트롱은 “여성이라고 속이지는 않지만, 독자들이 내 책을 읽은 뒤 ‘JP 델라니’를 여성 작가라고 생각하는 게 오히려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일부는 단순히 필명만 바꾸는 수준을 넘어선다. 여성들만의 경험과 감수성을 제대로 묘사하기 위해 과감히 노력한다. ‘S.J. 왓슨’이란 필명으로 활동하는 스티브 왓슨은 베스트셀러 ‘내가 잠들기 전ㆍBefore I Go to Sleep’을 쓰는 동안 브래지어를 착용했다. 덕분에 작품에서 일곱 군데나 등장하는 여성 속옷과 관련된 묘사가 극히 사실적일 수 있었다고 한다.

남성 작가들의 이러한 ‘성전환’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 책 시장 주도권이 여성에게 넘어갔기 때문이다. WSJ에 따르면 2016년 미국에서 팔린 소설책의 59%를 여성이 구매했다. 거의 6대 4 구도로 여성이 남성을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여성 독자는 남성과 달리 여성 작가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남녀별로 각각 2만명의 선호 작품을 조사한 결과, 여성 독자들이 꼽은 50대 우수작 중 46개가 여성 작가의 결과물이다. 이 신문은 돈과 인기를 위해 작품세계에서는 정체를 감추고 여성 행세를 하는 작가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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