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땅콩 회항’ 사건의 피해자인 승무원이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을 상대로 미국 뉴욕주 퀸즈 지방법원에 자신이 입은 정신적 손해 등에 대한 배상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고 한다. 회사와 관련한 부분은 일단 제외하고 생각해 보면 이처럼 승무원이 미국에서 소송을 제기한 이유에 대해, 미국에서 인정되는 이른바 ‘징벌적 손해배상’을 이용해 국내에서는 받기 어려운 막대한 배상금을 받아내기 위한 것 아니겠냐는 분석이 있는 것 같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가해자의 행위가 악의적이고 반사회적인 경우 실제 손해보다 많은 금액을 징벌적 의미에서 배상토록 해 형평을 기하도록 하려는 취지의 제도로 영미에서 발달했다. 이 제도는 미국의 판사가 한인이 운영하는 세탁소에서 양복 바지를 잃어버렸다는 이유로 우리 돈 약 540억원의 배상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알려지게 됐다. 그러면 이번 소송에서 승무원 측이 넘어야 할 법률적 장애물엔 어떤 게 있을까.
먼저, 미국 법원 측이 과연 이 사건을 재판할 관할이 자신에게 있다고 판단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 사건은 항공기 내에서 발생한 사건이라는 특수성이 있다. ‘항공기 내에서 발생한 범한 범죄 및 기타 행위에 관한 협약’(일명 동경 협약)은 항공기 내에서 발생한 형사범죄와, 항공기나 기내의 인명 및 재산의 안전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행위 등에 대해서는 항공기 등록국이 재판관할권을 행사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협약에 미국은 1963년, 한국은 1965년에 각각 가입 서명했다. 미국 법원이 이번 사건에서도 이 협약이 적용된다고 판단할 경우 자신의 관할을 부정할 것이다. 미국 법원이 논리적으로는 자신의 관할이 인정된다고 해도 소위 ‘불편한 법정’(Forum non conveniens)의 법리를 적용해 당사자의 편의 등 형평의 관점에서 관할 범위를 제한할 가능성도 크다. 쌍방이 모두 한국에 거주하고 증거나 관련 사건이 주로 한국에 있는 만큼 이런 법리를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 법원이 자기 관할을 인정할 공산이 크지 않다는 게 승무원 측이 넘어야 할 첫 번째 장애물이다.
다음으로, 미국 법원이 자신에게 관할이 있다고 인정한다 해도, 어느 나라 법을 적용할 것인지는 별개의 문제다. 이번 사건에 미국의 불법행위법을 적용할 것인지 한국의 민법을 적용할 것인지의 문제 즉 준거법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돼야 할 쟁점인데 이는 소위 국제사법 또는 섭외사법(conflict of law)의 문제로 다뤄진다. 미국 법원은 불법행위에 대해 전통적으로 ‘행위지법주의’에 따라 준거법을 결정해 왔다. 이런 입장을 이 사건에도 적용하면 이 사건의 가해 행위는 우리나라의 항공기 내에서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그 행위지를 한국으로 볼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 행위로 인한 결과, 즉 승무원의 정신적 손해 역시 항공기에서 발생했다고 할 것이므로, 더욱 그럴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이런 장애물들을 넘기 위해 승무원 측은 가해자의 불법행위가 미국 내에서 발생했다는 점을 주장해야 하고 그러려면 항공기의 특수성보다는 형평의 관점을 보다 부각시키는 논지를 펼 것으로 추측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법원은 이 사건에 대한 관할이 있는지 그리고 어떤 준거법을 적용할지 간략히 살펴보자.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한국에 주소가 있는 데다 동경 협약에 의하더라도 그 관할은 우리 법원에 있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우리 법원의 관할이 쉽게 인정될 수 있는 이유다. 우리 ‘국제사법’ 제32조 제1항 역시 행위지법 원칙을 규정하고 있어, 한국 국적항공기 내에서 발생한 이번 사건에 대해 한국법률을 적용하기에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더 많은 배상을 받으려고 한다는 세간의 평에 대해 승무원 측은 많이 억울해 할 수도 있다. 여러 법리적 난관을 감수하면서까지 미국에서 소송을 하는 이유는 단순히 금액적인 측면이 아니라 국내에서의 지나친 관심과 손해배상액에 대해 지나치게 보수적인 우리 법원의 태도, 가능한 각종 회유와 간섭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한 결과였을 것이다. 굳이 미국까지 가도록 만든 가해자와 대한항공, 일반의 법의식과는 다른 보수적인 법 제도 등을 원망했을 것이다.
언급한 것들 말고도 수많은 쟁점이 이번 사건에 있겠지만 어찌됐든 큰 틀에서 보면 분쟁의 국제화, 각국 법과 제도의 충돌이라는 어렵고도 흥미로운 주제가 제기되고 있다. 이젠 비단 법률가뿐 아니라 사업상 국제적 거래를 하거나 일상에서 해외직접구매(직구), 해외여행 등 국제 거래에 자주 노출되는 사람이면 이런 현상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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