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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2월 8일] 졸업을 앞둔 제자 K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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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2월 8일] 졸업을 앞둔 제자 K에게

입력
2013.02.0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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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메일을 받고 한참동안 답장을 못했다. ‘졸업이 실업’이라며 낙담한 네게 어설픈 위로라도 전하려다 이내 접고 말았어. 잘 포장된 위로상품이 시장에 지천이기 때문이었다. 아프니까 청춘이란 말을 너도 이젠 믿지 않겠지. 아파도 너무 아프니까 말이야. ‘이젠 뭘 더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너의 막막함을 읽으면서, 지난여름 졸업사진을 찍을 때의 기대에 찬 네 모습이 떠올랐다. 누구보다 성실했던 너를 나는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사람이 자동차도 아닌데 스펙 쌓으라 하니, 토익이다 뭐다 웬만한 스펙은 다 만들어 놨었지. ‘스펙보다 스토리’라는 취업성공수기가 떠돌자, 너는 불안한 마음에 아르바이트로 모은 금쪽같은 돈을 스토리 만드는데 투자하기도 했지. 멘토를 찾아 조언도 구했고, 인문학 서적도 열심히 읽으며 멋진 사회진출을 준비한 너였는데, 졸업을 앞둔 네게 우리사회는 비집고 들어갈 조그만 틈도 주지 않는구나. 네가 느낄 막막함이 얼마나 클까.

곰곰 생각해보니, 우리세대는 공허한 위로는 건넸을망정 한 번도 너희세대에게 사과하지 않았구나. 나는 1980년대에 대학을 다녔으니 소위 486세대다. 민주화라는 역사에 편승해서 그 과실을 모두 향유했던 운 좋은 세대지. 누구나 쉽게 취업해 괜찮은 연봉을 받았고, 노동조합으로부터 많은 혜택을 누리면서도 이를 비판하는 위선도 떨었다. 독재만 타도되면 되는 줄 알고, ‘좋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는 제대로 고민하지 못했어. 독재의 트라우마 때문인지 시장은 꽤 괜찮은 것이라 믿었고, 그 무지로 인해 결국 천박한 시장주의가 판치도록 방치하고 말았어. 능력도 패기도 우리보다 출중한 너희세대에게 괜찮은 일자리 하나 제대로 못주는 허약한 경제를 만든 책임은 우리세대에게 있다. 더 큰 잘못은 우리사회의 정신이 부박해져감에도 바로잡지 못한 것이다. 어린 시절 국민교육헌장을 달달 외우며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이라 배웠던 우리는, 국가가 우리를 인재로 호명하며 경제성장을 위한 인적자원으로 개조할 때, 그저 아무생각 없이 따라가기만 했다. 성장은 인적자원인 내가 잘나서 이룩된 것인 줄 알았고, 그 과실을 맘껏 소비하는 게 자유이자 선(善)인줄 착각했다. 국가의 자리를 자본이 대신한 지금에도 ‘자기계발형 인간’이 되길 강요하는 엇비슷한 이데올로기는 여전하다. 자기계발의 본래 가치마저 부정할 수야 없지. 그러나 자본에 의해 제조된 자기계발형 인간은 목적을 상실한 이기적 주체일 뿐이며, 자본에 의해 늘 이용당하는 객체란 사실을 이제야 겨우 눈치 챘다.

허약한 민주주의, 무능한 경제, 부박한 정신을 물려준 우리세대는 진지하게 먼저 사과했어야 옳았어. 성찰이 담긴 사과가 새로운 전망과 대안을 함께 찾을 수 있는 연대를 가능하게 할 수 있었는데, 답도 없는 허술한 위로를 건네느라 시간만 허비했다.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녹록치 않아. 곧 새 정부가 들어서지만 기대할 만한 게 없어 더욱 그렇다. 붕어빵 같은 스펙기반 채용에서 벗어나 열정과 능력만으로 선발하는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계획만 봐도, 열심히 자기계발하고 결과는 알아서 책임지라는 낡은 강요는 그대로 남아있으니까. 대학을 창업기지로 만들어 너희 후배들을 기업가로 양성하겠다는 말을 들으면 너는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다. 지금의 곤란을 타개하려면 함께 해야 한다. 그때만이 우리세대의 실패가 자산이 되고 너희세대의 열정과 창의가 원동력이 될 수 있어. ‘이젠 무엇을 해야 할지’라는 네 질문에 대한 답도 그때 비로소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한 가지 당부는, 지난 대선과정에서 너희세대가 보여준 ‘정치적 주체’로 거듭날 수 있는 가능성을 더욱 넓혔으면 좋겠다. 새 정치를 만들지 않고서는 전망과 대안을 찾기가 쉽지 않을 테니까. 졸업을 앞두고 상심한 네게 선생이랍시고 건네는 말이 고작 ‘미안하다’는 말이구나. 그러나 약속하마. 다음엔 꼭 전망과 대안을 담은 편지를 보낼 수 있도록 노력할게. 그때까지 졸업 축하 인사는 미뤄야 할 것 같다. 어디에서든 건강하길.

신은종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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