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한국 문학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을 2018 한국일보 신춘문예 심사가 완료됐다. 올해 응모자는 시 640명, 소설 562명, 희곡 150명, 동화 227명, 동시 244명 등 총 1,823명이다. 지난해(1,411명)보다 400여명 늘었다. 지난해 각각 290명, 85명에 그쳤던 소설, 희곡 분야 응모자가 2배 가까이 늘어난 영향이 크다. 지난해에 비해 동화(161명) 응모자는 소폭 늘었고, 시(625명)와 동시(250명) 응모자는 올해와 비슷했다.
올해 응모작의 키워드는 ‘먹고사니즘’이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지난해 최순실 국정농단 등으로 최근 몇 년 간 정치적, 사회적 이슈를 녹인 작품이 상당수 응모됐지만, 올해는 대통령 탄핵과 대선을 거치면서 다시 소소한 일상, ‘먹고 사는 과정’의 갈등을 다룬 작품이 강세를 보였다.
소설은 학교, 직장에서 ‘갑질’을 당한 경험 등 일상의 차별을 다룬 작품이 눈에 띄게 늘었다. 한 심사위원은 “올해 응모작은 촛불 정국이나 페미니즘 담론이 많을 거라 기대했는데 먹고 사는 문제, 구체적 삶을 그린 소설이 많았다”며 “나쁘게 말하면 소설의 야심이 사라졌다. ‘먹방’이 유행하는 시류에 영향을 받은 듯하다”고 말했다. 다른 심사위원 역시 “소소한 일상을 다루지만 주제가 확장되지 못하고 모호하게 끝난 작품이 많았다. 절실함이 부재한다는 느낌이 든다”고 밝혔다. 올해 소설부문에서는 특이하게 질병을 알레고리로 서사를 이끄는 작품, 늙음과 죽음에 대해 다룬 ‘노인문학’도 유독 많았다. 또 다른 심사위원은 “눈에 띄는 갈등서사는 줄고 미묘한 정서를 포착하고자 하는 소설이 많았다. 병으로 시작해 삶의 진실을 드러낸 작품이 많았지만 소재 차원에 머물러 아쉬운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시는 언어 자체를 정교하게 다듬은 작품이 다수 응모됐다. 한 심사위원은 “지난해에는 촛불정국과 맞물려 주제의식이 정치적인 큰 담론에 매몰됐는데, 올해는 내면적 이야기를 다룬 감정과잉이 많았다”고 말했다. 다른 심사위원 역시 “전에 비해 (사회)현장의 목소리, 현실의 경험이 줄고 언어에 충실한 작품이 많다. 수사적인 문장, 어휘가 많았다”고 덧붙였다.
시와 소설 모두 ‘쓰고자 하는 의지는 강하지만 정작 뭘 써야 할지 모르는’ 작품이 다수였다는 평이다. 시 부문 한 심사위원은 “현실에 날카로운 인식이 부족한데, 그걸 시로 만들려고 하니까 언어가 현실과 멀어진 경향이 있다. 지향점을 찾지 못하는 지금 시대를 반영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희곡 부문 응모작은 젊은 세대의 어려운 현실에 대한 이야기가 여전히 강세였다. 한 심사위원은 “젊은 세대의 ‘출구 없는 현실’, ‘전망 없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올해도 여전히 많이 다뤄졌다”며 “그래도 그 안에서 다양성이 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평했다. 다른 심사위원은 “부모로부터 받은 학대와 상처 등 작가들이 자신의 성장과정에서 경험한 트라우마를 표현한 듯한 작품도 많았다. 비슷한 작품이 이어져 지루한 면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올해 희곡 응모작의 큰 특징은 연극보다 영상 대본에 가까운 작품이 많다는 점이다. “진지하든 가볍든 에피소드에 의존하는 경향이 보여 마치 시트콤을 보는 것 같았다”는 평이다. 한 심사위원은 “캐릭터 노출이나 극적인 상황보다는 에피소드로 스토리라인을 끌어가는 작품이 많았다. 어릴 때부터 영상문화에 노출된 세대이기 때문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동시 응모작은 사회적 소재보다는 개인적 문제를 다룬 작품이 많았다. 당선작으로 꼽을 만한 좋은 작품 많았다는 평이다. 한 심사위원은 “동시가 요구하는 언어의 상상력과 수사, 동시와 동시의 형식이란 과연 무엇인가를 염두에 두고 치열하게 작업한 노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최근 10년간 동시의 변화를 성실하게 흡수하고 반영한 흔적이 선명했다”고 말했다. 시 언어를 보면, 동시와 시를 함께 공부하고 있는 응모자들이 많았다는 분석도 나왔다. 다른 심사위원은 “동시와 시를 함께 쓰는 게 요즘 경향이고, 덕분에 동시단이 풍성해졌다”면서도 “시적 완성도는 높지만 시에 가까운 작품들은 본심에서 제외했다”고 밝혔다.
동화 응모작에 대해 심사위원들은 ‘기본적인 인권의식’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한 심사위원은 “‘정박아’ 같은 단어를 쓰는 등 장애, 다문화 가정, 여성, 인종에 대한 편견이 여과 없이 드러나 놀랐다”며 “아이의 입을 빌어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해 동화를 택한 느낌마저 받았다”고 말했다. 다른 심사위원은 “트랜스젠더나 ‘노브라’ 같은 소재는 신선했으나 문학적 완성도가 낮았다”며 “동화는 기본적으로 소수자 문학인데 사회에 만연한 혐오에 대해 아동문학의 역할을 다 하는 작품을 보기 힘들었다”고 평가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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