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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이주일(88)잊을 수 없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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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이주일(88)잊을 수 없는 사람들

입력
2002.07.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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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에는 문병이나 문상, 결혼식을 죽어라고 안 가는 사람들이 꽤 있다.어떤 사람들이 그런지 알고 싶으면 그 사람 부친상이나 모친상에 가보면 된다.

십중팔구 영안실에서 밤을 새우는 사람이 거의 없다. 심한 경우에는 다음날 아침 운구할 사람조차 못구해 쩔쩔매는 경우도 있다.

조화가 아무리 많이 놓여있으면 뭐 하나. 모든 인간관계는 자기가 베푸는 만큼 돌아오는 법이다.

입원 후 9개월째. 폐암 보도 후 한결같이 병실을 찾아준 분들이 너무 많다. 과분하다.

주위 사람들의 경조사라면 불원천리 찾아간 내 지난 삶의 보답인 것 같다. 정말 친형제같이, 아니 더 힘든 일을 해준 분들에게 이 지면을 통해 고마운 인사를 전하고 싶다.

전주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이정범 사장.

나와 사업을 같이 한 것도, 축구를 같이 한 것도, 동문도, 군대 동기도 아닌데 거의 매일 전화를 걸어온다.

오로지 박종환(朴鍾煥)감독의 팬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집사람에게 “입맛이 어떠냐?” “폐에는 뱀탕이 좋다는데 수일 내 갖고 가겠다” 등의 말을 한다. 지난달에는 삼천포에서 생선을 구해 올라와 회를 만들어주고 그날 밤 비행기로 내려갔다.

부산에서 사업하는 이호식 사장. 서울에 올라올 때면 사업은 뒷전이고 내 옆에서 이런 저런 얘기만 하는 사람이다.

중요한 사업은 내 곁에서 전화로 처리한다. 대전에 사는 김도환 사장은 나를 친형처럼 보필해주는 사람이다.

지난달 월드컵축구 한국-이탈리아전을 보러 대전에 내려갔을 때에는 좋은 숙소를 통째로 빌려 우리 가족이 편하게 묵을 수 있게 해줬다.

강원도에 사는 어렸을 적 친구 김경기 김동석 김옥선. 이들은 미역줄거리 같은 과거 내가 좋아하던 시골음식을 만들어 간간이 부쳐준다.

그리고 제주의 술 친구들인 송형록 임동주 이철수 백재기 사장과 최정호 수산조합장. 내가 아픈 것을 제일 속상해 하는 사람들이다.

이밖에 하루가 멀다 하고 병실을 찾아준 박종환 감독, 여무남(余武男) 대한역도연맹회장, 임무박(林茂博) ㈜현성 회장.

여 회장은 내가 이 지면을 통해 ‘입은 걸지만 마음 하나는 순수하다’라고 한 것을 놓고 “명예훼손으로 검찰에 고소하겠다”며 또 걸쭉한 농을 건넸다.

박 감독은 월드컵 기간 내내 내게 전화를 걸어 한국 대표팀의 취약점이 어디인지 지적해주기도 했다.

월드컵 개막식에 나를 초청해준 이태복(李泰馥) 전 보건복지부장관, 국정감사 때 내가 그렇게 괴롭혔는데도 병실을 찾아준 조완규(趙完圭) 전 교육부장관,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기 전 인사를 드리러 왔다”며 이봉원(李俸源)_ 박미선(朴美善) 부부와 함께 찾아온 코미디언 이성미(李聖美), 월드컵 경기가 열린 상암동 서울 월드컵경기장과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보디가드 역할을 해준 후배 코미디언 이용식(李龍植)…. 이 사람들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지난해 11월 내가 폐암에 걸린 사실이 보도되기도 전에 소식을 듣고 찾아온 분들도 있다.

바로 가수 하춘화(河春花)와 그녀의 아버지 하종오(河宗五)옹이다.

그들은 파란 꽃이 예쁜 양란을 가져왔다. 70년대 서울 금호동에 내 집을 처음 마련해준 하옹은 나를 껴안고 “자네가 나를 돌봐야지 이게 어떻게 된 거냐?”고 흐느끼셨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 사람들 뿐이겠는가. 대전 경기장에 내려갔을 때 휠체어를 탄 나를 보고 “오, 필승~ 이주일!”을 외치던 수많은 젊은 붉은악마들, “선생님, 꼭 쾌차하세요”라고 말하던 중년의 아주머니들…. 정말 고맙다. 이 모든 분들을 위해서라도 힘을 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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