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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광복 72년 한국건축, 도전이 필요하다

입력
2017.08.30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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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시민혁명은 무릇 세계사적 사건이 되어 우리 역사의 값진 유산으로 남았다. 대신 대통령 탄핵에 이른 국가위기의 원인을 살피는 데도 소홀함이 없어야 한국사회가 한 단계 성숙한 모습으로 거듭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광복 72년을 맞은 한국의 현대건축 역시 새롭게 태어나길 바라는 마음이다.

한국의 현대건축이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서는 솔직한 통찰이 있어야 하고, 과거의 적폐청산을 통해 ‘새로운 도전’을 선언해야 한다. 이 중심에는 ‘한국다운 현대건축의 구현’이라는 시대적 과제가 있다. 이것은 건축설계에 관련한 디자인 원리의 패러다임을 한국건축의 전통적 DNA에 따라 창작하겠다는 정신(Genius)을 뜻한다.

주지하다시피 조선이 망하고, 일제 식민지 지배, 미 군정 통치, 6ㆍ25 전쟁, ‘개발 독재’를 거치며 한국의 현대건축은 제로섬 수준에서 순종적이고 의존적일 수밖에 없었다. 정부수립 이후 역사적 물줄기는 서구건축의 모방ㆍ수입ㆍ이식이 전부였을 정도로 주객의 전도는 자연스럽고 빨랐다.

이렇게 시작한 현대 한국건축은 특유의 국민성에 힘입어, 많은 선각자적 건축가들의 힘에 기대어 열악했던 혼란기에서 민주화ㆍ세계화 시대로 눈부시게 이어왔다. 문제는 피할 수 없이 수용만 했던 ‘토종 근대’와 ‘식민지 근성’의 행태가 1980~2000년대, 오늘에 이르기까지 별다른 동요 없이 비슷한 구조 속에 관행처럼 굳어져온 점이다.

그래서 이 같은 배타적 현실에 대한 통렬한 자성을 촉구해야 한다. 우리가 이 땅 위에 펼쳐진 ‘건축의 가치와 역량’을 바르게 알아야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고, 국가의 품격이 결국 건축을 통해 본연의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정정해야 할 변질된 현대사도 있다. 비록 버거웠지만 역동적이었던 1960~1980년대 한국건축에서 김중업과 김수근, 두 건축가의 빼어난 역할을 지나칠 수 없다. 김중업에게는 간과할 수 없는 큰 성과가 있다. 그야말로 천박한 환경에서도 한국 고유한 미적 특성을 역발상으로 연출한 프랑스 대사관은 시대의 명작으로 남아있다.

김수근 역시 작가적 자존과 예술가적 족적은 건축에 대한 사고의 유연성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의 창작행위에 가려진 표절을 그대로 감춘 채 사실을 호도하려는 작위와 묵인은 진실을 왜곡하는 창작윤리의 문제로서 지양돼 마땅하다.

최근작에서 전통을 재해석하려는 시도가 있고, 기존 관념을 창조적으로 파괴하려는 도전은 긍정적 코리언이즘을 위해 다행스러운 현상이다.

그럼에도 아직 서구 역사와 다르게 우리의 건축은 일반 대중과 예술 영역과는 동떨어져 있다. 예컨대 우리 건축은 아직 부동산 투기 대상이고, 부수고 짓는 인프라 시설물 정도로 인식되고 있으니 안타깝다. 이 시대가 역사의식을 버린 아나키즘의 시대인지, 서구 건축가들의 경연장인지, 도대체 비판적 논쟁조차 배척하는 건축계의 도그마는 한심하기 짝이 없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집단 최면이 걸린 아류 집단이기라도 한 것인지가 헷갈릴 정도다.

한국의 건축계가 올림픽에 버금간다며 그토록 서울유치에 열을 올려왔던 세계 건축가(UIA)대회가 드디어 9월 초로 다가왔다. 사실 ‘조선건축’을 빼놓은 ‘서울의 현대’에서 어떤 감동을 줄 수 있겠는가.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지어질 현대차그룹 비즈니스센터(GBC)의 계획안 역시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 건물은 세계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다. 세계적으로 ‘현대만의 유일한 작품’을 만들 수 없었을까. 이 안을 통과시킨 ‘서울시 심의’도, 이를 지켜보고만 있는 건축계의 안이한 문제의식도 놀라울 지경이다.

우리가 쟁취한 촛불시민혁명은 자주 국가의 정체성을 요구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세계 건축가들을 모아놓고 축제나 즐길 때가 아니라, 내부의 잘못된 관행과 구태부터 혁파하여 한국의 호모데우스로 돌아가는 길이다.

이배화 전 한국건축미래설계원 교수ㆍ건축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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