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병실로 조완규(趙完圭) 전 교육부장관이 찾아왔다.교육부장관을 지낸 양반이 왜 내 병문안을 왔는지 궁금하실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시면 저랑 술 한잔 합시다”라고 했다. 나 역시 “좋죠”라고 흔쾌히 대답했다.
그와 내가 이렇게 막역한 사이가 된 것은 1992년 가을 국정감사 때의 ‘악연’에서 비롯됐다.
92년 9월초 나는 몹시 초조한 상태였다. 국회 공전으로 변변한 의정활동도 못한 상태에서 10월 14대 국회 국정감사가 코 앞에 닥친 것이다.
나는 정주영(鄭周永) 대표를 찾아갔다. “국감 준비를 해야 하니 사무실 하나만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아는 게 뭐가 있습니까? 내가 실수하면 국민당에 문제가 생기니 제발 도와주십시오. 국감에서도 코미디언 노릇을 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라고도 했다.
결국 정 대표의 도움으로 여의도에 아파트 한 채를 세낼 수 있었다. 보좌관 7명과 함께 그곳에서 한달 내내 합숙했다.
그때 진짜 공부를 많이 했다. 나는 국회 교육청소년위원회 소속이었는데 보좌관들이 매우 똑똑해 자료를 많이 챙겨줬다.
대학 교수들의 채점비리, 시도교육청의 공사 낙찰비리 등 내가 국감 때 교육관련 비리를 많이 파헤칠 수 있었던 것도 이 합숙훈련 덕택이었다.
마침내 10월15일 교육부에 대한 국정감사 첫날이 밝았다. 이날 나는 교육부 공무원이 폐교를 팔아먹은 사실까지 파헤치며 이름을 날렸다.
“다음부터 잘 하겠습니다”라는 관계 공무원의 대답에는 “내가 생방송을 많이 해봐서 아는데 생방송에는 ‘다음’이 없다”고 호통을 쳤다.
“교육부에 계신 분이 거짓말만 하려고 하지 말고 잘못을 시인할 줄도 알아라”고 준엄히 꾸짖기도 했다.
이날 국감에서 조완규 장관을 처음 만났다. 땀을 뻘뻘 흘리며 답변을 하는 조 장관의 모습이 애처롭게 보였다.
조 장관을 너무 괴롭혔다는 생각에서 나는 “장관님, 고마웠습니다. 국감 자리를 떠나 만나게 되면 한번 즐겁게 해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비록 감사장은 웃음바다가 되고 말았지만 그 후 나와 조 장관은 정말 격의 없는 사이가 됐다.
그러나 국감 때의 악연이 지금까지 계속 남아있는 경우도 있다.
10월19일 체육청소년부 국감에서 나는 “간부가 평직원보다 많은 조직이 어디 있느냐”며 국민체육진흥공단의 전면 해체를 주장했는데 이 발언이 이진삼(李鎭三) 당시 체육청소년부 장관을 무척 당황케 한 모양이다.
그는 80년대 말 군단장으로 재직할 때부터 나와 친하게 지냈으니 그 충격은 더욱 컸던 것 같다.
그는 국감을 앞두고도 직원들에게 “정 의원은 신경 안 써도 돼”라며 내게 자료조차 보내주지 않았다.
나와의 친분관계를 너무 과신했던 모양이다. 그러다 국감에서 믿었던 내게 ‘박살’이 난 것이다. 이 장관은 그 후 지금까지도 나와는 말 한마디도 나누지 않고 있다.
어쨌든 국감은 성공적이었다. 국감 이후 동료 의원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어느 분야에서 최고이면 다른 분야에서도 최고’라는 인상을 심어준 모양이다.
한 의원은 “스타는 역시 스타”라고 나를 추켜세웠다. 국감 전 나를 보기만 하면 웃던 교육부 공무원들의 얼굴에서도 웃음이 사라졌고 내가 자료 요청을 하면 바짝 긴장할 정도가 됐다.
94년 민자당으로 옮겨 문화체육공보위원회에서 활동할 때에도 국감만큼은 항상 우수의원 순위에 들 정도로 잘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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