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이 무서운 기세로 대중음악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언더그라운드의 장르에서 벗어나 아예 주류 대중음악을 휘어잡고 있다. 최근 음원 차트를 보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박진영의 ‘어머님이 누구니’를 제치고 29일까지 일주일째 각종 음원차트 1위를 지키고 있는 래퍼 산이의 ‘미 유’를 비롯해 힙합 아이돌 방탄소년단의 ‘아이 니드 유’,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언프리티 랩스타’가 제작한 지민과 아이언의 ‘퍼스’ 등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박진영과 제시, 김예림과 빈지노 등 가수와 래퍼가 짝을 지어 곡을 발표하는 것은 일상이 됐다. 도끼, 아이언, 자이언티, 매드클라운 등 주류 가수의 앨범에 피처링을 해주는 래퍼들이 인기가 폭등하고 있다.
덕분에 골수 10,20대 팬들에게 인기였던 래퍼 빈지노ㆍ도끼ㆍ더 콰이엇의 소속사인 일리네어 레코즈는 ‘힙합계의 SM엔터테인먼트’로 급성장했다. 한 가요기획사 관계자는 “최근 들어 인기 래퍼의 경우 1회에 1,000만원을 넘는 행사 출연료를 받으며 연간 수입이 수억원대에 이를 정도여서 일리네어나 아메바컬처, 브랜뉴뮤직 같은 힙합 기획사에 들어가려는 무명 래퍼들이 줄을 섰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장 개척의 주도자는 정통 힙합 래퍼가 아니라 가요풍 ‘감성 힙합’ 래퍼들과 힙합을 가미한 아이돌 그룹들이다. MC몽, 산이가 전자라면 후자는 방탄소년단, 블락비, 위너, 갓세븐 등이다. 정통 래퍼들이 랩의 가사, 라임(각운), 플로(리듬을 타고 이어지는 가사의 흐름)를 중시하는 것과 달리 대중적으로 변형된 힙합은 유행하는 힙합 리듬을 기초로 하되 선율이 뚜렷한 보컬 사이에 랩을 얹는 식이다.
사실상 힙합이 주류로 부상하게 된 데에는 아이돌 기획사들이 발 빠르게 힙합을 끌어 안은 결과다. 방탄소년단 등 댄스에 힙합을 가미한 아이돌 그룹이 늘고, 신인 아이돌 그룹에서 래퍼가 차지하는 비중도 커지고 있다. YG엔터테인먼트가 새롭게 내놓는 남성그룹 아이콘은 지난해 ‘쇼미더머니3’에 출연해 인기를 모은 바비와 비아이를 멤버로 둔 덕에 공식 데뷔하기도 전에 10대의 우상으로 떠올랐다. YG는 아예 힙합 전문 레이블 ‘하이그라운드’를 설립했다. JYP엔터테인먼트도 신인 여성 그룹에 힙합을 부각시킬 예정이다.
힙합의 영향력에 불을 지핀 것은 유명 래퍼들이 총출동한 케이블채널 엠넷의 ‘쇼미더머니’다. 힙합 전문 평론가 강일권씨는 “10대나 20대 초반의 소수 마니아들만 좋아하던 힙합이 대중적 인기를 끌게 된 계기”라고 분석하며 “현재 힙합음악계를 ‘쇼미더머니’가 좌지우지하는 상황인데 (하나의 방송이 힙합을 주도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드문 일”이라고 말했다.
대중음악평론가 강태규씨는 “10대 특유의 저항과 반항이 랩의 강한 표현과 리듬, 자신을 과시하는 정서와 부합한다면 보컬과 결합한 랩은 유행을 따르는 20대의 취향에 잘 맞는다”고 힙합의 저변 확대를 설명했다. 그는 “힙합이 주류로 자리잡았다는 인식에 따라 실력 있는 래퍼를 영입하려는 가요기획사가 많다”고 덧붙였다. 대중음악 지형에 힙합의 영토는 더욱 넓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