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만 당선 영광 좁은문 수백 수천대 1 경쟁률에도 작가의 꿈 못 버리는 문청들
단편소설 리뷰 회당 10만원 일부 면대면 첨삭·등단 지도 심사위원 공정성 문제까지
신춘문예가 넘어야 할 관문인 예비작가들에게 그 문은 늘 좁다. 주요 중앙일간지 9곳(경향신문 동아일보 문화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을 포함해 지방지까지 신춘문예(신인문학상 포함)를 시행하는 신문사는 20여 곳. 시, 소설, 희곡, 평론 등 부문별로 수백에서 수천 대 1까지 경쟁률이 다르지만 오직 해당 부문에서 1등, 1명만이 당선의 영광을 누린다. 중복 투고도 허용되지 않고, 등단하고 재 응모하는 경우도 있어 체감하는 관문은 더 좁다. 2002년 등단한 시인 윤성학(43)씨는 10년 젊음을 바친 끝에 등단했다. 서울 강남운전면허 시험장에 붙어 있던 포스터 ‘한 번 낙방 두 번 낙방, 늘어가는 운전실력’에 위로 받던 아픈 시절이었다. 그러나 신춘문예의 신열을 앓으며 ‘운전실력’을 늘리고 있을 작가 지망생들에게 등단 이외 위로의 말이란 없다. 대학원생 공모(27)씨도 당선 소식을 들을 때 터질 것 같은 희열을 상상하며 6년 동안 20여 차례 신춘문예 문을 두드려왔다. 그는 "등단 이상, 이하 의미도 아니지만 문단 인정을 받고 주변 우려도 씻을 유일한 관문”이라고 했다. 이런 간절한 문청들을 겨냥한 문학과외 시장은 문단의 새로운 논란거리로 등장했다. 소설가협회, 시인협회 등에 따르면 등단 문인들이 문학아카데미, 인터넷강의 등으로 운영하는 글방들이 장르 별로 20~40곳에 이른다.
● 등단 돕는 신춘문예 과외시장
시인 박해람씨는 2009년부터 작년까지 경운서당을 통해 작가 지망생들을 지도했다. 15명의 문하생들과 격주로 2시간씩 합평(合評: 여러 사람이 모여 글을 비평하는 것)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박씨는 "대부분 신춘문예나 문예지에 등단하려고 찾아온다. 이곳 출신 수상자들이 알려지면서 몰려드는 사람들을 돌려 세우느라 애를 먹은 적도 했다"고 소개했다. 박씨 문하생 중 3명이 2011년 3개 일간지 신춘문예와 신인상에 당선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표절 논란과 중복투고 등의 이유로 3편 모두 당선이 취소됐고, 박씨가 문하생들의 글을 대필해준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의혹에 침묵했던 박씨는 "나도 활동하는 작가인데 대필은 자살행위"라며 "내 제자가 아닌 다른 당선자의 작품 중에도 내 시와 비슷한 구절이 있는데 그것도 표절이나 대필이라 할 것인가"라고 반박했다.
소설가 박상우씨는 ‘소행성 B612’라는 유료 글방 커뮤니티를 15년째 운영하고 있다. 한 반 18명의 작가 지망생들에게 격주로 2시간여 글을 비평해주고 소설작법과 실기이론을 가르친다. 지금까지 등단한 작가가 수십 여명에 이를 만큼 이 커뮤니티는 유명세를 탔고 이 바람에 심사위원으로 활동한 박씨가 제자 작품 심사를 공정하게 할 수 있는지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박씨는 "심사 중에 제자의 작품이 두 번 올라와 심사를 거부하고 다른 심사위원에게 결정을 맡겼다"며 "자기가 심사를 맡은 언론사에는 제자들에게 투고하지 말라는 일각은 주장은 역차별"이라고 말했다. 이어 "등단 자체를 목표로 하는 강의가 아니며, 또 갑작스럽게 글을 봐준다고 등단이 되는 것도 아니다”고 했다.
온라인 리뷰 프로그램까지 생겨..대학도 지원사격
최근에는 이메일, 전화, 온라인 등으로 작가 지망생들의 글을 리뷰해주는 새로운 프로그램도 생겼다. 소설가 김도언씨는 지난 10월부터 회당 10만원씩 받고 A4용지 2장 분량으로 작가 지망생들의 단편소설을 이메일로 리뷰를 해준다. 의뢰자들 대부분은 등단을 목표로 하는 일반인들이다. 김씨는 "작가 지망생들의 '열렬한 독자' 입장에서 그들의 글을 평가하는 것이며 첨삭해 주지는 않는다"라며 "소설이 인생에서 갖는 의미에 대해 가르쳐 주고 방향을 제시할 뿐 특정 공모전을 위한 지도는 아니다"고 설명했다. 시인 황병승씨 역시 김씨처럼 습작 시를 메일과 전화로 리뷰 해준다. 황 씨는 "혼자 시를 쓰면서 자기 수준을 알고 싶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구체적으로 입상을 목표로 의뢰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일부 대학들은 학교 명예를 위해 학생들의 글쓰기와 신문문예 응모를 적극 지원한다. A대는 소설, 희곡, 평론 등 분야에서 '신춘문예 특별반'을 운영, 문인들과 합평을 진행한다. 여름방학 때는 '창작교실'을 통해 만해마을, 미당문학관 등으로 문학캠프를 떠나거나 신경림 문정희 등 문인들을 초청해 교습을 한다.
● "문학의 질적 저하" vs "저변 넓히는 일"
등단한 문인들이 신춘문예 수업에 나서는 것에 대해 문단의 시선은 엇갈린다. 무엇보다 작가가 되는 길인 등단이 경력 쌓기 수단으로 전락한다는 우려가 크다. 언제든 심사위원이 될 수 있는 현직 문인들이 제자 작품을 공정하게 평가하겠냐는 의혹도 반복된다. 방재석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는 “공개적으로 가르치는 것은 그나마 낫지만, 일부 문인들은 면대면(面對面)으로 첨삭해주고 빠른 등단을 위한 지도를 한다”며 “결국 창작 기술을 갖춘 기능적인 작가를 양성해 한국 문학 전체의 질을 떨어뜨린다”고 비판했다. 한 문예지 편집자는 "문학과외를 받아 등단해도 그런 작가가 문단에서 살아 남는 건 불가능하다”며 "자기 세계를 구축하고 등단 이후에도 꾸준히 수준 높은 작품을 낼 공부를 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등단 때 작품이 생애 최고의 작품이 되는 불상사가 일어나선 안 된다는 것이다. 문인들의 지도가 문학적 글쓰기의 저변을 넓히는 효과를 가져온다는 긍정론도 만만치는 않다. 등단이 목적인 사람들 뿐만 아니라 혼자 글 쓰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일반인들에게 보다 건강하게 문학적 글쓰기를 접하게 하는 순기능이 크다는 것이다. 한만수 동국대 문예창작과 교수는 "유소년 축구클럽이 있어야 좋은 국가대표 선수가 나오듯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도하는 것은 한국문학을 튼튼하게 하는 기반"이라며 "작품을 읽고 리뷰 하는 일은 품이 많이 드는데 적은 비용을 받고 하는 것을 상업적 이익이나 명예욕을 바라고 한다고 보긴 어렵다"고 했다. 박해람 시인도 "첨삭을 받아들이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고 등단 후에도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도록 돕는 것이 수업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공개적인 아카데미나 리뷰 과정의 비용은 월 2회, 2시간 기준으로 10만~15만원 수준이다. 문예창작과 졸업생이 월 서너 차례 대입 작문과외를 해주고 30만~50만원을 받거나, 서울 강남의 고액 논술과외비에 비하면 금액이 크다고 할 수는 없다. 정준호기자 junho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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