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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아니면 여자, 이분법으로 나누지 않는 사회를 원해요”

입력
2017.11.16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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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수를 지망하는 연습생 한서희씨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밝힌 ‘트랜스젠더 여성은 여성이 아니다’는 글은 트랜스젠더와 관련해 뜨거운 논란을 인터넷에서 촉발시켰다. 특히 2001년 데뷔한 트랜스젠더 연예인 하리수씨가 논쟁의 초점이 됐다. 트랜스젠더들은 하씨의 데뷔 당시에도 ‘진짜 여성이 아니다’라는 주장이 있었지만 이번의 거센 트랜스젠더 혐오 발언들에 대해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의 홈페이지 소개글. 조각보는 이름처럼 트랜스젠더의 복잡다단한 삶이 얽히고 설키며 성별정체성의 다양한 모습이 함께 어우러져 한국 사회에 펼칠 수 있기를 희망했다. 홈페이지 캡쳐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의 홈페이지 소개글. 조각보는 이름처럼 트랜스젠더의 복잡다단한 삶이 얽히고 설키며 성별정체성의 다양한 모습이 함께 어우러져 한국 사회에 펼칠 수 있기를 희망했다. 홈페이지 캡쳐

특히 인권단체들은 요즘 트랜스젠더 관련 행사를 하고 있어서 인터넷 논란이 뼈아프게 다가오고 있다. 국내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는 13~20일 사이를 트랜스젠더 추모주간으로 정하고 심리 워크숍, 영화상영회 등 각종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는 지난 2015년부터 활동했다. 이 단체는 트랜스젠더의 삶을 지원하고 의료 지원 및 관련 정책 등 포괄적인 문제들을 다루기 위해 결성됐다. 또 트랜스젠더간 교류를 증진시키기 위해 매달 트랜스젠더 지지모임 ‘TGG’를 갖고 있다.

추모 기간 중 11월20일은 미국 등 해외 일부 국가에서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Transgender Day of Remembrance, TDoR)로 기념하고 있다. 1998년 미국에서 트랜스젠더 혐오자들에게 살해된 리타 헤스터를 추도하던 것에서 유래한 기념일이다. 이 땅에서 트랜스젠더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 지 듣기 위해 트랜스젠더 추모주간에 사진전시회를 하고 있는 조각보의 활동가인 준우, 희정, 다니, 민성씨를 15일 서울 마포구의 인권재단 ‘사람’에서 만났다.

‘법의 보호’ 받으려면… 까다로운 성기수술이 필수

트랜스젠더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정체성을 유지한 채 법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법의 보호를 받으려면 법원 승인을 받아 성별을 의미하는 주민등록번호 뒷자리의 첫 번째 숫자를 바꿔야 한다. 하지만 남성을 뜻하는 1이나 여성을 뜻하는 2로 바꾸는 과정은 험난하다. 2014년 성적지향ㆍ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가 실시한 성소수자(LGBTI) 대상의 설문조사를 보면 트랜스젠더 응답자 가운데 법원에 성별정정을 신청한 231명 중 30명(13.2%)만 승인을 받았다. 준우씨는 “국내에는 트랜스젠더 관련법이 없고 대법원 내규에 따라 성별정정신청이 승인된다”며 “따라서 전적으로 판사의 재량권에 달렸다”라고 강조했다.

의료적 조치는 크게 외과수술과 호르몬 투여 등 두 가지로 나뉜다. 호르몬 투여 처방을 받으려면 정신과병원에서 성 정체성 장애 처방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 수술의 경우 목젖과 가슴 등 신체 외형을 바꾸는 1단계, 생식능력을 제거하는 2단계, 성기를 새로 만드는 3단계 과정을 거친다. 법원에서는 수술을 받는 것을 조건으로 성별 정정을 승낙한다. 따라서 모든 트랜스젠더가 성전환수술을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법의 보호를 받으려면 이 과정을 밟아야 한다.

이렇게 까다로운 절차를 요구하는 이유는 성전환을 악용할지 모른다는 사람들의 편견 때문이라고 조각보는 설명했다. 성전환으로 병역면제 판정을 받은 28세 트랜스젠더 여성이 군 복무를 회피하기 위해 여성 호르몬 주사를 맞았다는 혐의로 지난해 재판에 회부됐다가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서울 마포구 인권재단 '사람'에서 진행중인 트랜스젠더 추모주간 사진전시회 한 켠에 마련된 단상. 트랜스젠더를 상징하는 파란색과 분홍색 줄무늬 깃발과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을 기리는 글이 전시돼 있다. 박소영기자
서울 마포구 인권재단 '사람'에서 진행중인 트랜스젠더 추모주간 사진전시회 한 켠에 마련된 단상. 트랜스젠더를 상징하는 파란색과 분홍색 줄무늬 깃발과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을 기리는 글이 전시돼 있다. 박소영기자

국내 성소수자 평균보다 힘든 트랜스젠더의 삶

법적 성별 문제 못지 않게 트랜스젠더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수 많은 오해들이다. 대표적인 것이 성전환을 남성이 여성으로 바꾸는 것으로만 오해하는 경우다. 민성씨는 “트랜스젠더라고 하면 하리수씨를 대표적으로 떠올리다 보니 여성이 남성으로 성전환 하는 것을 생소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트랜스젠더 또한 동성을 사랑할 수 있는데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준우씨는 “트랜스젠더를 무조건 이성애자로 생각하는 편견이 있다”며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을 해도 남성을 사랑할 수 있는데 ‘그럼 왜 굳이 성전환을 하냐’라고 묻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트랜스젠더는 어렸을 때부터 징조가 있다는 오해들도 있다. 희정씨는 “어렸을때부터 성소수자라는 점을 자각했다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성인이 돼서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한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삶의 질도 문제다. 국내 트랜스젠더들은 다른 성소수자들보다 고용이 불안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 성적지향ㆍ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 조사에 따르면 정규직 일자리를 가진 트랜스젠더는 249명 응답자 가운데 26.1%에 불과했다. 다른 성소수자들의 정규직 근무 비율은 44%다.

트랜스젠더의 평균소득 역시 다른 성소수자들보다 낮았다. 같은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의 평균 근로소득은 267만7,000만원이었으나 트랜스젠더는 평균 205만9,000원에 그쳤다. 트랜스젠더 중에서도 남녀 소득차가 있었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Male To Female, MTF) 한 경우 187만원, 여성에서 남성으로 전환(Female To Male, FTM) 한 경우는 212만3,000원이었다.

인터뷰를 한 조각보 활동가들은 트랜스젠더들의 삶이 개선되려면 사회구성원을 남녀로만 보는 이분법적인 시각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성씨는 “성 전환 후 의식적으로 남성용 공중화장실에 들어갔지만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올 때 성폭력에 노출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결국 여자 화장실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며 “성중립화장실의 확대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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