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실세설 확산에도 무시하다
연설문 수정 등 국정농단 의혹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태도 바꿔
임기말 레임덕 가속 우려한 듯
“靑, 사정ㆍ정보라인 통해 혐의 확인
선제적 수사 지시로 선회” 분석도
우병우 거취 침묵…”재신임” 해석
박근혜 대통령이 또 다시 강수를 꺼냈다. 박 대통령은 20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최순실(60ㆍ최서원으로 개명)씨의 미르ㆍK스포츠재단 자금 유용 의혹에 대한 철저한 검찰 수사를 지시했다. 박 대통령이 퍼스트 레이디로 활동하던 1970년대 후반 인연을 맺어 한때 ‘언니 동생’하던 사이인 최씨를 검찰 수사로 내몬 것이다. 박 대통령은 “누구라도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면 엄정히 처벌 받을 것”이라고 말해, 최씨를 감싸지 않을 뜻을 분명히 했다.
이로써 박 대통령은 최씨 의혹이 ‘개인 비리 의혹’일 뿐, 청와대가 연루된 ‘권력형 비리’일 가능성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과거 정권마다 반복된 ‘임기 말 대통령의 측근ㆍ친인척 비리→ 급격한 권력 누수’의 악순환을 피하기 위한 조치다. 청와대 관계자는 “최씨가 청와대를 등에 업고 재단을 쥐락펴락했다는 의혹은 사실이 아니며, 검찰 수사에서 실체가 밝혀질 것”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최씨의 자금 유용 의혹이 사실이라면, 청와대와 상관 없이 호가호위 했을 개연성이 상당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달 K스포츠 재단 설립ㆍ운영에 최씨가 깊숙이 개입했다는 의혹으로 시작된 ‘최순실 비선실세 설’이 있는 대로 번지는 내내 침묵했다. 청와대는 새로운 의혹이 나올 때마다 “일고의 가치도 없다”며 무시했다. 여론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는 박 대통령 특유의 ‘마이웨이 스타일’ 탓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최씨가 박 대통령 연설문을 종종 수정했다는 보도가 나오는 등 최씨의 국정 농단 의혹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청와대는 정면 대응으로 태도를 바꾼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이날 “의혹이 의혹을 낳고 그 속에서 불신이 커져가는 상황에, 제 마음은 무겁고 안타깝기만 하다”며 “저는 오로지 국민께서 저를 믿고 선택해 주신 대로 국민을 위하고 나라를 지키는 소임을 다한 뒤 제가 머물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 외에는 어떠한 사심도 없다”고 말했다.
여권 인사는 “최씨 주변에서 무엇이 튀어 나올지 짐작할 수 없는 상황에서, 최씨 스캔들이 국정을 마비시키는 상황을 피하려고 뒤늦게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가 사정ㆍ정보라인을 통해 최씨의 비리 혐의를 상당 부분 확인하고 ‘선제적 수사 지시’로 방향을 틀었다는 관측도 있다.
박 대통령이 이날 최씨와 미르ㆍK스포츠 재단 의혹을 해명한 발언은 약 3,200자 분량에 달했다. 박 대통령은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거취 문제나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 논란에 대해선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21일 청와대 국정감사를 앞두고 우 수석 교체설이 오르내리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의 ‘침묵’은 그를 재 신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