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17개월 연속 증가세에도
실업률은 17년 만에 최악 ‘쇼크’
취업자 증가 두달째 10만명대 그쳐
도소매 등 내수 분야 고용 위축
수출기업서도 기계가 일자리 대체
지난달 우리나라 수출은 역대 3월 기준 처음으로 500억달러선을 돌파했다. 17개월 연속 증가세도 이어갔다. 이달 들어서도 1~10일 수출액은 140억 달러를 기록, 전년동기대비 25.8%나 늘어났다. 이처럼 수출이 날개를 달고 비상하고 있는데도 일자리는 오히려 최악의 상황으로 추락하고 있다. 지난달 실업률은 3월 기준으론 17년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실업자 수는 125만명도 넘어섰다. 수출과 기업의 호황이 내수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로는 연결되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다. ‘고용 없는 성장’이 점점 더 고착화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1일 통계청의 ‘3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실업률은 4.5%를 기록, 전년 동월 대비 0.4%포인트 상승했다. 3월만 본다면 2001년(5.1%) 이후 최고치다. 특히 청년(15~29세) 실업률은 11.6%에 달했다.
지난달 실업자 수도 125만명으로, 1년 전보다 12만명(10.6%) 증가했다. 3개월 연속 100만명을 웃돈 것이고, 통계 작성 방식을 변경한 1999년 이후 가장 큰 규모(3월 기준)다.
지난달 취업자 수는 2,655만5,000명으로 1년 전에 비해 겨우 11만2,000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신규 취업자 증가폭은 2월(10만4,000명)에 이어 두 달 연속 10만명대에 머물렀다.
이처럼 고용 상황이 악화한 것은 내수와 직결된 분야의 고용이 크게 위축된 영향이 컸다. 무엇보다 도매 및 소매업, 교육서비스업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9만6,000명과 7만7,000명이나 감소했다. 지난해 고용 확대를 견인했던 건설업도 주택 준공 물량 축소에 따라 취업자 증가세가 둔화됐다. 건설업은 지난해 2월부터 6개월 연속 10만명 이상 신규 취업자가 늘었지만, 지난달에는 4만4,000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최저임금 인상 영향을 크게 받는 숙박 및 음식점업 취업자도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만명이 줄었다. 제조업도 지난달엔 1만5,000명 늘어나는 데 그쳐 전체 취업자 수 증가에 기여하지 못했다. 빈현준 통계청 고용통계과장은 “반도체 등 전자부품 중심의 고용 증가세는 이어졌지만 조선업 불황 여파로 기타운송장비 분야 일자리 상황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작년 3월 간호간병통합서비스가 시작되면서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취업자수가 급증(46만3,000명)했던 기저 효과도 없잖다.
고용 시장의 우울한 성적표는 수출 대기업의 사상 최대 실적 잔치와는 크게 대조된다. 이날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 1~10일 수출액은 140억달러에 달했다. 이 기간 반도체 수출은 무려 46%나 증가했다. 수출은 지난달에도 515억8,000만달러로, 전년 대비 6.1% 증가했다. 이러한 수출 호조에 코스피 상장사의 지난해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158조원과 115조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제조업 중심의 수출 대기업 실적 개선이 일자리 증가로 이어지는 경제의 선순환 구조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기계가 일자리를 대체하는 ‘고용 절약형’ 기술 진보가 이어지고 있고, 기업들의 해외 공장 증설로 인해 ‘고용 없는 성장’이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한국은행의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 따르면 수출 10억원이 유발하는 취업자수는 지난 2000년 15.0명에서 2014년 7.7명으로 반토막이 났다.
전년 대비 16.4% 상승한 최저임금(시급 7,530원)도 고용 악화에 한 몫 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최저임금 인상 하나로 전체 고용시장 위축을 설명할 순 없으나 시차를 두고 영향을 미치는 게 사실”이라며 “특히 도소매ㆍ숙박음식점업 등은 이미 고용 한계치에 다다른 상황에서 임금까지 오르자 업주들이 고용을 축소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도 고용 상황은 크게 개선되긴 힘든 상황이다. 청년 일자리 확대 등을 위한 추가경정예산(3조9,000억원) 편성 효과도 미지수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충격도 완화하고 실업자 규모를 줄이려면 재정 확대 정책이 수반될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반면 최배근 건국대 교수는 “추경으로 고용률이 반등할 수는 있겠지만 ‘반짝 효과’에 그칠 것”이라며 “조선, 해운, 자동차 등으로 산업 생태계가 연쇄적으로 붕괴되고 지역경제까지 잠식되는 걸 막지 못하면 고용 지표는 더 악화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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