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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이해해" 선생님의 관심받자 싸움꾼서 모범생으로

입력
2014.08.2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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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고의 '작은 학급제', 작은 목표로 공부에 흥미 주고

다양한 활동으로 학교 적응케 "수업에 아는 내용 나오니 재미"

서울 선사고등학교 3학년 신희동(가운데)군과 조시훈(오른쪽)군이 7월 30일 기자와 만나 "하도 심하게 놀아 봐서 이젠 할 게 공부밖에 없다"며 웃고 있다. 이들은 학생 하나하나에 관심 갖고, 먼저 이름을 불러 준 교사들 덕에 오랜 방황을 끝냈다. 김주성기자 poem@hk.co.kr
서울 선사고등학교 3학년 신희동(가운데)군과 조시훈(오른쪽)군이 7월 30일 기자와 만나 "하도 심하게 놀아 봐서 이젠 할 게 공부밖에 없다"며 웃고 있다. 이들은 학생 하나하나에 관심 갖고, 먼저 이름을 불러 준 교사들 덕에 오랜 방황을 끝냈다. 김주성기자 poem@hk.co.kr

서울 선사고 3학년 조시훈(18)군은 중학교 때만 해도 동네가 알아주던 ‘주먹’이었다. 싸움을 잘 하고 싶다는 생각에 중2 때부터 종합격투기 학원을 다녔고, 지역에선 또래 아이들이 감히 건드리지 못할 정도였다. 약한 친구들을 괴롭히거나 돈을 빼앗는 짓을 하진 않았지만 아이들이 눈도 못 마주치고, 지나가면 길을 비켜줄 정도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같은 학교 3학년인 신희동(18)군은 중학교 시절 자타가 공인하는 ‘날라리’였다. 고교 입학 당시 희동이의 헤어스타일은 노란색으로 염색한 단발머리였을 정도였다.

둘은 고교 3년간 한번도 같은 반인 적이 없지만 절친이다. 중학교 시절 방황하면서 성적이 최하위권이었다가 고교에서 다시 공부를 시작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시훈이는 “하도 심하게 놀아봐서 이젠 할 게 공부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사고뭉치들을 바꾼 ‘작은 학급제’

둘은 중학교 때 교사들의 차별을 경험했다. 사고뭉치인데다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다. 희동이는 “한 번 사고를 치면 학교는 낙인을 찍는다”며 “그런 아이들은 자든 뭘 하든 내버려두고, 가르치려고도 하지 않는데 그것 때문에 더 방황한다”고 말했다. 교사들의 폭력도 심했다. 그는 “중2때는 하키 채로 맞기도 했고, 수업 시간에 떠든다고 복도에 모두 ‘엎드려 뻗쳐’ 시킨 뒤 한 대씩 때릴 정도로 여러 선생님들에게 많이 맞았다”고 말했다.

그랬던 둘이 바뀐 것은 선사고에 진학하면서부터다. 희동이는 “선생님들이 자고 있는 아이도 깨워서 공부 시키려고 하고, 학생 하나하나에 신경을 쓴다”며 “오히려 성적 낮은 아이들의 공부를 더 챙겨주기 때문에 그 영향을 받아 공부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시훈이도 “학교에서 아이들이 많이 바뀌고 있다”며 교사와 학교에 대한 신뢰를 드러냈다.

이런 변화는 선사고가 운영하는 ‘작은학급제’ 덕분이다. 30명 가량인 한 반을 둘로 나눠 수업 외의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선사고 강명희 교사는 “한 반에 학생이 15명뿐이라 개별 학생에게 더 관심을 쏟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상황을 속속들이 파악하게 되면서 관계도 친밀해졌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이 자고 있으면 화를 내며 깨우는 것이 아니라 “어제 몇 시까지 일했니? 힘들겠구나, 1분만 더 자라”고 하는 식이다. 학생수가 많은 학급에선 쉽지 않은 일이다.

강 교사는 “아이들 입장에서 마음을 살짝 건드려주면 기분 나빠 하는 대신 ‘자신을 생각해준다’고 생각한다”며 “그렇게 되면 아이들이 미안한 마음에 오히려 잠을 안 잔다”고 말했다.

싸움을 잘하는 시훈이도 그렇게 강 교사의 시선 안에 들어왔다. 강 교사는 “시훈이는 반 친구들이 다른 반 아이들에게 괴롭힘 당하지 않도록 지켜주는 역할을 할 정도로 파워가 있었지만 수업 시간에는 늘 기가 죽어 있었다”며 “불러 이야기를 해봤더니 공부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고 털어놨다”고 말했다. 그래서 강 교사는 점심시간 마다 시훈이를 불러 함께 영어 단어 10개씩 암기하는 것으로 공부를 시켰다.

공부하는 재미 만들어 준 학습 동아리

공부에 의욕이 생기면서 시훈이와 희동이는 영어 학습동아리까지 만들게 됐다. “공부 못하는 애들끼리 모였다”고 해서 동아리 이름은 ‘오합지졸’로 지었다. 둘은 방과 후 매일 2시간씩 남아 영어 공부를 했다. 기초 영어단어도 몰랐기 때문에 어린이들이 보는 영어동화책 읽기부터 시작했다.

희동이는 “처음에는 교과서 지문도 못 읽고, 시험은 무조건 찍었는데 이제는 시간이 좀 걸려도 교과서 지문은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선사고에서는 학생들 스스로 만든 학습동아리가 활성화돼 있다. 교사에게 배우는 것 보다 학생들끼리 서로 배우며 자기주도적으로 공부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마음에 맞는 친구들끼리 영어 원서 읽기, 한국사 시험 대비, 모의고사 영어 성적 올리기 등 학습목표를 정해 동아리를 만들면 교사 1명이 멘토로 붙는다.

학습동아리를 통해 처음으로 공부를 스스로 해본 둘은 성적도 눈에 띄게 올랐다. 시훈이는 국어 모의고사 점수를 30점 넘게 올렸고, 희동이는 지난 기말고사에서 세계사는 만점, 법과정치는 1문제만 틀렸다. 시훈이는 “미리 예습해 아는 내용이 수업에 나오면 무슨 이야기인지 알아들을 수 있어 재미있다”고 말했다. 둘은 “공부 안하고 놀았던 시간이 아깝다”는 말까지 했다.

둘의 변화는 주변 학생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우리야말로 대표적으로 공부 안하고 놀던 애들인데, 우리가 공부 시작해서 성적도 오르니까 주변 친구들도 위기감을 느꼈는지 뒤늦게 열심히 책을 파더라구요.”

희동이는 “중학교 시절 사고를 치면서 보고 겪은 게 많아서” 법대에 진학해 형법을 전공한 후 검사가 되는 게 꿈이다. 평소 옷 입는 센스가 뛰어난 시훈이는 의상디자인학과 진학이 목표다. 이를 위해 여름방학 동안 하루에 10시간씩 미술학원에서 보냈다.

새로 생긴 목표를 위해 두 사람은 힘차게 날갯짓하고 있는 중이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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