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27년을 맞은 그룹 공일오비(015B)의 활동 모습은 조금 독특합니다. 공일오비는 멤버 정석원, 장호일의 얼굴은 잘 몰라도, 곡을 들으면 무릎을 탁 칠 만큼 친숙한 그룹입니다. 공일오비는 1990년 데뷔 때 가요계 최초로 객원 보컬 체제를 도입해 ‘얼굴 없는 가수’로 활동했습니다. 가수 윤종신, 고 신해철, 이승환 등 가요사에 한 획을 그은 유명가수들이 신인 시절 공일오비의 음악으로 이름을 알리고 함께 성장했습니다.
공연장에서 “오빠”를 외치던 함성은 다소 잠잠해졌지만, 공일오비는 여전히 젊은이들에게 사랑 받고 있습니다. 유행에 민감한 음악가들과 꾸준히 소통하며 협업한 결과물을 내놓는 게 인기 비결입니다. 이렇게 만든 곡은 꽤 실험적입니다. 정규 7집 앨범의 수록곡 ‘너 말이야’(2006)에서는 힙합그룹 다이나믹 듀오와 가수 박정현을 한 곡에 등장시켰습니다. 경쾌한 힙합을 주로 하던 다이나믹 듀오와 리듬앤블루스(R&B)를 추구하는 박정현의 색깔을 융화시키기가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후로도 걸그룹 포미닛, 남성그룹 비스트의 용준형, 인디밴드 신현희와 김루트 등 20대 가수와의 신선한 컬래버레이션이 이어졌습니다.
거창한 의미를 가지고 시작한 작업은 아닙니다. 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장호일(본명 정기원)은 “애초 공일오비 멤버들은 연주자밖에 없어 보컬을 들여야 했다”고 밝혔습니다. 공일오비는 1988년 신해철의 무한궤도 멤버였던 조형곤, 조현찬, 정석원과 정석원의 형인 장호일이 결성했습니다. “보컬만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연주자의 노력은 묻히는” 밴드의 숙명에 오기가 생긴 이들은 “연주자가 주인공이 되는 그룹을 만들자”는데 마음을 모았다고 합니다.
지금이야 객원 보컬, 피처링의 개념이 흔하다지만, 보컬을 보조 역할로 두는 시스템은 당시엔 획기적인 발상이었습니다. 장호일은 “늘 객원 보컬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다”며 “객원 보컬의 개념을 대중에게 이해시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회상했습니다.
27년간 보컬을 찾다 보니 신인을 발굴해내는 감각도 예리해졌습니다. 2006년 ‘잠시 길을 잃다’는 공일오비가 지인을 통해 신인가수 보니(신보경)의 노래를 듣고 독특한 음색에 반해 ‘캐스팅’했습니다. 지난 9월 발매한 ‘친구와 연인’을 부른 신현희와 김루트는 대구에서 버스킹을 하던 무명시절부터 장호일이 지켜봐 온 그룹입니다.
최근 그가 유심히 지켜보는 또 다른 가수가 있습니다. 미국 공영방송 NPR의 유명 프로그램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에 출연했던 민요 록밴드 씽씽입니다. 장호일은 “민요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감각도 뛰어난데, 퍼포먼스까지 재치있다”며 “구체적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공일오비 음악과 함께 했을 때 어떤 가능성이 있을까 상상해본다”고 말했습니다.
장호일은 공일오비를 “하이브리드”라고 표현했습니다. 발라드, 록, 댄스, 힙합 등 다양한 장르와 복합적인 시도를 이어가지만, “늘 공일오비만의 독특한 색깔이 담겨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얼핏 보면 트렌드를 쫓는 듯하지만, 곡 안에 녹아 있는 “아재들만의 깊은 감성”이 그룹을 장기간 이어온 원동력이 됐던 셈입니다. 장호일은 공일오비의 목표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고 싶은 음악은 다 해본 것 같아요. 무슨 장르를 하던 간에 잘하고 싶은 게 욕심이죠. 노래가 좋고 안 좋고를 떠나서, 음악적 완성도를 인정 받아 ‘믿고 듣는 공일오비’가 되고 싶네요.”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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