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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시스, 배철현의 비극 읽기] 적에게 연민을 느낄 때, 위대한 시민은 태어난다

입력
2017.04.1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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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 '페르시아인들'에서 패장 크세르크세스의 어머니 아토사(오른쪽)와 그를 위로하는 페르시아 원로.
비극 '페르시아인들'에서 패장 크세르크세스의 어머니 아토사(오른쪽)와 그를 위로하는 페르시아 원로.

‘비극’이 제3자의 눈으로 나를 보는 수련이라고 정의하자. 그러면 우리는 어떤 눈으로 세상을 보는가? 제3자의 눈은 무엇인가? 그 눈으로 보는 우리의 모습은 무엇인가? 우리의 ‘어떤 모습’을 발견하고 실망하고, 그것에 슬퍼하고, 다시는 그런 모습을 취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가? 비극적 영웅들에겐 한가지 치명적인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이것 때문에 비극적 파국을 맞이한다. 바로 ‘오만’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이 두 가지가 있다. ‘오만’과 ‘자존감’이다. 자존감은 스스로 존귀하게 여기고, 그것에 걸맞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긍정적인 정신 상태다. 자존감의 시선은 자신을 수련하는데 온전히 맞추어있다. 결코 곁눈질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는 죄악, 오만

오만은 자존감과는 다르다. 무엇보다도 시선의 방향이 다르다. 오만한 자는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는 주의결핍증환자다. 정보통신기술(IT)은 편리함과 더불어 병을 하나 안겨주었다. 인간을 더욱 더 주의결핍증환자로 만들었다. IT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국가’에 등장하는 기게스의 반지처럼,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익명성을 보장한다. 익명성이 책임회피로 종종 무장하여 정제되지 않는 막말을 그 공간에 올린다. 현대인들은 이 ‘기게스 증후군’에 걸려 남들이 하는 말과 행동에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깊이 숙고하지 않는다. 현대인들은 한 순간도 휴대폰 없이 지낼 수 없는 환자가 되었다.

오만한 자는 자신에게 집중할 수 없다. 그는 주로 남들의 삶에 관해 참견하고 설교한다. 그는 다른 사람의 안녕이나 입장을 헤아릴 능력이 없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오직 자신의 욕망, 자신의 본능, 자신의 필요 그리고 자신의 변덕이다. 그는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지적으로 우월하고 중요하다고 착각한다. 그는 다른 사람이 이루어 놓은 업적을 인정하지 않거나 폄하한다. 그리고 자신을 우월하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결점이나 한계를 보지 못하는 장님이다.

히브리 성서 ‘잠언’ 16장 18절은 오만이 초래하는 결과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파괴 앞에 오만이 있고, 파멸 앞에 거만이 있다.” 오만에 해당하는 히브리 단어는 ‘가온(gaon)’이다. ‘가온’은 자신이 현재 누리는 혜택을 자기 혼자의 힘으로 성취했다고 착각하며, 동시에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게으름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오만은 사실 법정 용어다. 오만에 해당하는 고대 그리스어는 ‘휴브리스(hubris)’다. 휴브리스는 가해자가 자신의 정신적이며 육체적인 쾌락을 위해 피해자를 무시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고대 아테네에서 오만은 가장 심각한 범죄로 피해자에게 창피를 주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는 무례한 모욕이었다. 오만의 원인은 가해자의 자화자찬이나 자기만족이다.

기원전 4세기 아테네 정치가이며 연설가인 데모스테네스는 오만이란 단어를 다음 상황에 사용한다. “미디아스라는 사람이 원형극장에서 (다른 사람들이 다 보는 가운데) 나의 얼굴을 가격하였다.” 혹은 “피고인인 코론이 어떤 사람을 가격하고 우쭐하며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이 두 경우다 과도한 자기만족을 위해 주위사람에게 행사한 폭력을 말한다.

비극 ‘페르시아인들’은 오만의 해독제

아리스토텔레스는 오만이 문명을 야만으로 이끄는 가장 중요한 범죄라고 규정하며 그의 저서 ‘수사학’(1378b)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오만은 피해자에게 창피를 줍니다. 오만은 어떤 일이 당신에게 일어날 것이기 때문도 아니고, 어떤 것이 당신에게 일어나서도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오만은 단순히 당신 자신의 만족을 위해 사용된 것입니다. 오만은 과거 상처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설욕입니다. 오만을 통해 얻는 쾌락의 원인은 이것입니다. 순진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막 대함으로 자신의 우월성이 강화된다고 착각합니다.” 고대 그리스 최초의 비극인 ‘페르시아인들’은 바로 이 오만에 대한 경고이자 숙고다. 이 비극의 맨 처음에 등장하는 자들은 페르시아 원로들이다. 페르시아의 왕 크세르크세스와 모든 젊은이들은 아테네로 원정을 떠났다.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 수사엔 원로들과 크세르크세스의 어머니 아토사뿐이다.

페르시아 원로들이 합창대가 되어 살라미스 해전의 결과를 기다리며 노래하고 있다. 전쟁 결과에 대한 생각이 불길하다. 그들은 페르시아 군대의 힘은 ‘바다 (거침 없는)파도’(87행 이후)와 같다고 말하지만, 동시에 신들이 ‘망상’(그리스어 ‘아파테’)에 빠져 반대의 결과도 일어날 수 있다고 걱정한다. 그 와중에 크세르크세스의 어머니 아토사가 무대에 등장한다. 원로들의 인사말이 어색하다. “당신은 신(다리우스 대왕)의 부인이며 신(크세르크세스)의 어머니입니다. 운들이 우리에 대항하여 우리 주인을 내버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페르시아에서 왕은 신처럼 추앙받았다.

아토사도 불길한 꿈을 꿨다. “꿈에서 여인 두 명이 등장한다. 한 여인은 페르시아인처럼 옷을 입었다면 다른 여인은 그리스인처럼 옷을 입었다. 그녀들은 서로 싸우고 있었다. 그러자 크세르크세스는 두 여인에게 전차의 말처럼 멍에를 끼워 달리게 하였다. 그러다 말이자 한 여인의 굴레를 벗겨내자 전차의 멍에가 부서진다. 크세르크세스는 전차에서 떨어졌다. 그러자 돌아가신 그의 선왕 다리우스가 하늘에 나타나, 그를 처량하게 굽어보고 있다. 크세르크세스는 땅 바닥에 떨어진 것이 슬퍼 자신의 옷을 갈기갈기 찢기 시작한다.” 아토사는 이 악몽에서 깨어나 아폴로 신에게 제사를 드린다. 아폴로 신은 그녀에게 매가 독수리를 쪼아 먹는 환상을 보여준다. 원로들은 걱정스런 황후에게 아첨하기 위해, 다리우스 무덤에 가 제사를 지낼 것을 요구한다. 그들은 말한다. “신탁이 어떠하든, 위대한 제국 페르시아는 번창할 것입니다.”

무대 위에 한 페르시아 전령이 등장한다. 그는 전쟁에서 돌아와 끔찍한 소식을 전한다. 페르시아 군대가 전멸했다는 소식이다. 크세르크세스의 생사여부는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러자 원로들과 전령은 목놓아 울기 시작한다. 아토사는 울면서 노래한다. “선한 원로들이여! 나는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침묵합니다. 불행으로 할 말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이 소식은 견디기 너무 힘듭니다. 그 전쟁에 관한 이야기든 질문이든.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신들이 보낸 슬픔을 견뎌야 합니다.”(‘페르시아인들’ㆍ290~294행)

오만의 자리를 연민이 대신케 하라

아테네 원형극장에 모인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의 원수인 크세르크세스의 어머니가 절규하는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스스로 우쭐했다. 자신 스스로 기뻐하지 않고 남들의 슬픔을 보고 기뻐하는 오만이 마음 깊은 곳에서 살며시 고개를 들고 있었다. 그러나 전령이 살라미스 전투에서 죽은 페르시아인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열거하고(302~308행) 아토사의 절규를 들으면서 오만이 점점 사라지고 연민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아이스킬로스는 아테네인들의 귀에 거슬리고 야만인처럼 들릴 수밖에 없는 페르시아 군인들의 이름을 ‘페르시아인들’ 여러 군데에서 길게 호명한다. 아무리 적이라 할지라도 그들도 자신과 같은 인간이란 점을 상기시킨다. 그는 이 비극을 살라미스 해전에서 패한 페르시아인의 입장에서 서술하였다. ‘야만인’이란 그리스어 ‘바르바로스’(barbarous)는 영어 barbarian의 어원이다. 그리스인들은 페르시아인들이 그저 ‘바르바르’라고 말할뿐이라며 그들을 ‘바르바로스’라고 지칭했다.

아이스킬로스는 ‘제3자의 눈으로 자신을 보는 연습’ ‘원수의 눈으로 자신을 보는 연습’을 극대화하기 위해 크세르크세스의 어머니 아토사를 등장시켰다. 죽은 자식을 위해 절규하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아테네인들은 황홀경을 경험한다. 나와 너, 아군과 적군, 문명과 야만이라는 이중구조가 원수 어머니의 눈물을 통해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어머니의 눈물은 이성적이지 않고 잘잘못을 따지지 않는다. 이 눈물은 현재 상태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용서한다. 아이스킬로스는 위대한 시민을 꿈꾼다. 원수 어머니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수련을 권한다. 아테네 시민들의 눈에서 자신들도 모르는 눈물이 주룩 흘렀다. 위대한 시민은 이 연민으로 탄생하기 시작한다.

언급되지 않는 살라미스 해전의 영웅

살라미스 해전의 아테네 영웅은 테미스토클레스다. 그는 크세르크세스가 아테네를 다시 공격할 것을 예상하여, 기원전 483년 아테네 남쪽에 위치한 라디움이란 광산에서 발견된 은광으로 함선인 삼단노선 100척을 증강하고 살라미스 해전을 진두지휘한 장군(스트라테고스ㆍstrategos)이었다. 그는 아테네 시민의 영웅이었다. 그는 아마도 ‘페르시아인들’이 초연된 기원전 472년, 아테네 원형극장의 맨 앞 중앙에 앉았을 것이다. 그는 아마 임진왜란의 이순신 장군처럼 신적인 추앙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비극작품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다만 그를 암시하는 문구인 ‘아테네 군대의 한 그리스 사람’(고대 그리스어 ‘아네르 헬렌’ㆍ355행)이라는 표현만 무심하게 전령의 입을 통해 전달된 뿐이다. 아이스킬로스는 이 침묵을 통해 아테네 시민들에게 무엇을 교육하고 있는가? 자화자찬은 오만의 씨앗이다. 아이스킬로스는 아테네의 탄생과 위대한 유럽문명의 시발점이 된 살라미스 해전을 통해, 무엇을 가르치는가? 성숙하고 훌륭한 문화는 자화자찬의 유혹에서 인내하고 절제하는 힘이다. 아이스킬로스는 대한민국에 묻는다. 원수의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습니까? 아니 원수의 어머니의 시선으로 세상을 봅니까? 자화자찬의 유혹에서 절제할 수 있습니까?

※원전 인용은 모두 필자 번역입니다.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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