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재단 관여 싫어했다”
대통령-기업 사이 뇌물 부인
“돈거래는 옷값밖엔 없다”
예산 편성 개입ㆍ직권 남용 공모엔
“그렇게 하실 분 아니야” 엄호
“몰랐다” “아니다.”
예상대로였다.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법정에 모습을 드러낸 최순실(61ㆍ구속기소)씨는 8시간 넘게 진행된 신문에서 대개 두 가지 말로 답변을 마무리했다. ‘모르쇠’와 의혹 부인은 박근혜 대통령 구하기에 집중됐다. 사실에 대한 증언보다는 박 대통령을 감싸는 변론에 가까웠다. 이미 드러난 사실만 마지못해 시인했고, 청와대 출입이나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 등 주요 사항에 대해선 회피했다.
16일 서울 재동 헌재 대심판정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제5차 변론 기일에 증인으로 나온 최씨는 박 대통령의 탄핵 소추 사유와 관련된 질문에 “대통령은 몰랐다”는 식의 답변을 반복했다. 최씨는 그간 출석을 거부하다 강제구인 압박에 처음 나왔다.
최씨는 미르ㆍK스포츠 재단을 박 대통령과 함께 사실상 지배한 사실이 있는지 묻는 대통령 법률 대리인단 측 신문에 “그런 걸 지배라고 표현하는지는 모르지만, 지배하려고 생각한 적도 없고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고 답했다. 자신이 두 재단에 관여한 사실을 대통령이 아는지 묻자 “대통령은 제가 멀리서 지켜본다고만 생각했지 깊숙이 관여하는 걸 싫어하셨다”며 자신의 재단 개입 사실을 몰랐다고 답했다. 재단 출연금과 관련해 박 대통령과 대기업 간의 뇌물수수 의혹을 부인하기 위한 취지로 풀이된다.
박 대통령과 경제적 이해관계를 같이한 적이 있는지를 묻는 대리인단의 질문에 최씨는 “전혀 없다”고 답했다. “대통령의 개인적인 채무를 대신 갚아주거나 대통령과 같이 사업을 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그런 적이 없고 (돈 거래는) 옷 값 밖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대통령 측이 박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묻자 “어떻게든 (국민들이) 잘 살게 하고 싶어했고 국가를 선진국 대열에 올리고 싶어하셨던 것으로 안다”며 “대통령의 충신으로 남고 싶었는데 이런 누명을 쓰게 됐다”고 울먹였다.
정부 예산 편성에 개입했다는 의혹에는 “어떤 경우에도 정부 예산에 참여한 적이 없다”며 오히려 증거를 대라고 반문했다. 최씨는 “저는 한번도 돈을 받은 적이 없다. 제 통장이나 개인 이득을 취한 적도 없다”며 “제가 어떤 이권에 개입했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보시라”고 항변했다. 이어 “대통령도 제가 모신 분으로서 그렇게 하실 분이 아니다”며 대통령을 적극 엄호했다.
최씨는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과 이메일 아이디 및 비밀번호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연설문을 유출하는 등 대통령의 직권남용에 공모했는지를 묻는 질문에도 대통령을 감싸는 답변을 했다. 대통령 측과 국회 소추위원 양측이 “정 전 비서관과 아이디, 비밀번호를 공유한 사실을 대통령이 아는지” 묻자 “그 분은 직접적으로 몰랐을 것”이라며 “(정 전 비서관이) 일일이 직접 보고 안 했을 것”이라고 답했다. 최씨가 받아본 메일에 고위 공무원 인사자료가 있었는지 묻자 “검찰에서도 실물은 보여주지도 않았다. 저는 본 적이 없다”고 인사개입 의혹을 부인했다.
세월호 참사 당일 고영태 더블루K 이사와 통화했는지에 대한 질문에도 “저는 전혀 기억이 안 난다”며 “어제, 오늘 일도 기억이 안 나는데 2014년의 일을 제가 어떻게 (기억하겠느냐),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최씨는 앞서 10일 증인으로 소환됐지만 딸 정유라(21)씨의 수사와 자신의 형사재판 준비를 이유로 출석하지 않았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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