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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의 굴곡을 품은 주변인들 이야기 담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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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의 굴곡을 품은 주변인들 이야기 담았죠”

입력
2017.03.26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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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작부터 중ㆍ단편 7편 묶어

보도연맹ㆍ세월호 등 사건들 담아

“전부 기억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

국가 폭력에 피해를 입은 삶 많아

자꾸 남의 고통에 귀 기울이게 돼”

한국 현대사에서 삶이 파괴된 이들을 그려왔던 작가 임철우는 "개인의 삶과 죽음, 불행이 개인적이기보단 사회와 역사의 맥락 안에서, 국가의 폭력 아래 이뤄졌다"고 말했다. 이천희 제공
한국 현대사에서 삶이 파괴된 이들을 그려왔던 작가 임철우는 "개인의 삶과 죽음, 불행이 개인적이기보단 사회와 역사의 맥락 안에서, 국가의 폭력 아래 이뤄졌다"고 말했다. 이천희 제공

‘그녀는 타고난 이야기꾼, 탁월한 기억력의 소유자였다. 동일한 이야기인데도 매번 다시 풀어낼 때마다 새롭고 감칠맛이 났다. 물론 그녀 역시 자신의 고정된 역할을 꽤나 즐기고 있었음에 분명하다. 그녀의 기억창고에 저장된 목록은 실로 다채롭고 무궁무진했다.’(단편 ‘이야기 집’)

50여 쪽 짧은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저마다 겹겹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생의 마지막 순간, 자신의 남은 이야기를 다 토해내려는 인물들이 반추하는 삶은 현대사 굴곡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일상의 순간을 감각적으로 풀어낸 젊은 작가들의 단편에서 볼 수 없는 진득한 이야기의 맛, 짠하고 헛헛한 정서가 그의 소설에는 있다.

중견 작가 임철우(63)가 다섯 번째 소설집 ‘연대기, 괴물’(문학과지성사)을 냈다. 380여쪽, 두툼한 소설집은 멀게는 2007년작부터 가깝게는 2015년작까지 7편의 중·단편을 품었다. ‘한국 문학사를 통틀어 가장 윤리적인 작가’(문학평론가 김형중)란 수식어가 무색하지 않게 작가는 역사의 환부, 그 속에서 파괴된 인물들의 삶을 곡진하게 담는다. 몇 달 전부터 제주에 머물고 있는 임철우 작가는 전화 인터뷰에서 “쓸 때는 몰랐는데 작품을 모아놓고 보니 전부 기억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였다. 주인공들이 나처럼 나이 든 인물이란 점도 공통점”이라고 말했다.

표제작 ‘연대기, 괴물’의 주인공 송달규는 그 중에서도 가장 서러운 인물이다. 한국전쟁 당시 ‘몽둥이패’(서북청년단) 두목 ‘갈고리’로부터 겁탈당한 여자가 사생아로 낳은 그는 생모가 떠난 뒤 외조부모에게서 자라났다. 베트남전에서 민간인을 학살한 뒤 정신적 외상과 함께 고엽제 피해를 입은 그는 기도원에서 25년을 버틴 뒤 노숙자로 거리를 전전한다. 세월호 참사를 전하는 종합편성채널(종편) 뉴스에서 추모 리본을 제거하겠다고 나선 팔십 대 노인을 보고, 생부임을 직감한다.

임철우 소설가. 문학과지성사 제공
임철우 소설가. 문학과지성사 제공

-보도연맹부터 베트남전, 광주민주화운동, 세월호까지 너무나 많은 ‘사건’을 직간접적으로 겪은 주인공의 삶이 자칫 작위적으로 읽힐 수 있겠다.

“(송달규 출생은) 제가 태어나기 3,4년 전 고향에서 실제 있었던 일로, 듣고 자라며 세계관에 영향을 준 얘기다. 익숙하고 절실한 화두였고, 주인공 세대의 한국인이라면 그 사건들을 다 직간접적으로 겪었다고 생각한다. 우리처럼 험한 현대사를 겪은 세대일수록(작가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 참여했고, 마지막 날인 5월 27일 집으로 돌아와 계엄군 발포소리를 들었다. 이 죄책감으로 17년간 광주민주화운동을 기록한 5권짜리 소설 ‘봄날’을 썼다) 개인의 삶이 국가 폭력으로 피해를 입고 파괴된 경우가 많다. 특별한 인물은 아니다.”

-이야기를 세월호로 끝맺은 이유는.

“참사 5,6개월 후 쓴 작품이다. 세월호 참사 자체보다 이를 대하는 엄청나게 다른 시각이 어떻게 한 사회에서 가능한가를 파헤치고 싶었다. 당시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서북청년단을 부활하자’는 얘기가 나왔는데 기가 막히더라. 그렇게 말하는 이들이 어디서 왔는지, 그들을 저렇게 만든 게 무엇인지, 그 근원을 파헤치고 싶었다. 단순한 정치성, 당파성으로 해석되는 게 아니다.”

-작가 임철우하면 흔히 현대사 굴곡을 써온 작가라고 소개된다. 이런 명명이 아쉬울 때가 있나.

“내가 관심을 갖고 보는 사람은 대개 부당한 폭력으로 삶이 파괴된, 고통 받는 인간이다. 개인사라는 것, 개인의 삶과 죽음, 불행이 개인적이기보단 사회와 역사의 맥락 안에서, 국가의 폭력 아래 이뤄졌다. 제가 지금까지 폭력에 대해 일관되게 써왔다면 이의가 없지만, 역사를 써왔다고 한다면 주객이 전도된 관찰이라 말하고 싶다.”

작가는 “이번 소설집은 제가 직간접적으로 겪은 일이나 주변인들의 이야기가 상당수”라고 덧붙였다. 소설 속 인물들은 대부분 죽음을 앞두거나 이미 죽은 이들이다. 아들과 아내를 잇따라 잃고 키우던 개를 안락사시키고 생의 마지막 여행을 떠나는 남자(‘흔적’), 교통사고와 췌장암으로 두 부인을 줄줄이 저 세상으로 떠나 보내는 남자(‘간이역’) 등 서러운 생의 연대기를 작가는 기억하고 애도한다. 단편 ‘세상의 모든 저녁’은 노인 고독사를 소재로 한다. 변두리 도시 다세대 주택 쪽방들에서 노인들은 끔찍한 모습으로 죽어나간다. 일흔 세 살 허만석도 마찬가지여서 식사를 하다 냄비에 머리를 처박고 급사한다. 액자형 소설은, 일주일째 아무도 찾는 이 없어 주검이 부패되는 과정을 허만석 영혼의 시점에서 전하면서, 젊은 날 옹기장이였던 그의 생을 파노라마처럼 펼친다. 작가는 “내면의 체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쓰기 때문에 신문 기사를 소재로 소설을 시작해도 인물과 충분히 공감하지 못하면 더 쓰질 못한다”고 말했다.

“때린 사람은 때렸다는 자책감이 들 뿐이지만 당한 사람은 삶이 송두리째 파괴돼버리죠. 피해자가 원하는 건 복수가 아니라, 모든 걸 예전으로 돌리라는, 불가능한 요구입니다. 찢겨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요. 그래서 자꾸 남의 고통에 귀 기울이게 되죠.”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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