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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산업을 망치는 창조적인 방법

입력
2016.03.23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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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참가한 배우 전도연(가운데) 등이 해운대 야외무대에서 영화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올해 부산영화제에선 이런 모습을 못 볼 가능성이 크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해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참가한 배우 전도연(가운데) 등이 해운대 야외무대에서 영화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올해 부산영화제에선 이런 모습을 못 볼 가능성이 크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해 개봉한 이란 영화 ‘택시’에는 한국인이라면 귀가 솔깃해질 장면이 나온다. 영화 파일을 불법적으로 파는 판매상에게 한 단골 영화광이 김기덕 감독의 최신작이 있냐고 묻는다. 해외에서 더 유명한 김 감독에 관한 에피소드는 여럿 있다. 터키 이스탄불 거리를 걷던 김 감독을 터키인들이 알아보고 인사말을 건넸다는 풍설에 고개가 끄덕여질 만하다.

한국영화는 해외에서 제법 대우를 받는다. 미국이나 유럽 국가의 박스오피스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지만 영화광들의 환대를 받아왔다. 1990년대 후반 이후 빼어난 인재들이 충무로로 향했고, 때마침 대기업이 영화산업에 진출하며 돈줄 역할을 했다. 2000년 초반 세계 3대 영화제(칸영화제, 베를린영화제, 베니스영화제)에서 임권택, 박찬욱, 이창동, 홍상수, 김기덕 감독 등이 잇달아 수상 성과를 올리며 서구인의 시선을 잡았다.

칸영화제 등에서의 수상으로 한국영화의 유럽 예술영화관 상영은 좀 더 용이해졌다. 세계 영화계로부터 변방 취급을 받던 20세기에 비하면 2000년대 한국영화는 약진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영화의 수출 총액은 2,638만475달러로 102편이 해외에 팔린 2001년(수출 총액 1,124만9,573달러)에 비해 크게 늘었다. 지난해 수출된 한국영화는 529편이었다.

우수한 인력과 자본만으로 세계인의 눈길을 끌어당길 수 있었을까. 1996년 출범한 부산국제영화제가 세계로 향하는 한국영화의 창구 역할을 했다. 부산을 찾은 해외 영화인들은 눈 밖에 있던 한국영화를 발견했고, 부산에서 맺어진 인연을 바탕으로 한국 영화인들은 세계 영화제로 나아갔다. 칸영화제 경쟁부문 첫 진출(‘춘향뎐’)과 칸영화제 첫 수상(‘취화선’) 등은 부산영화제를 발판 삼아 이뤄낸 성취다. 부산영화제에서 프로젝트를 공개한 뒤 종잣돈을 모아 제작된 ‘괴물’은 칸에 진출하며 봉준호 감독의 이름을 세계에 알렸다. 이병헌은 칸영화제에 초대된 ‘달콤한 인생’으로 할리우드 입성의 꿈을 이뤘다. 부산영화제가 없었으면 험난한 과정을 겪었을 일들이다. 여러 성공 사례를 목도한 재능 있는 아시아 신진 영화인들이 부산영화제 참가를 열망하게 됐다. 부산영화제가 아시아 최대 영화제로 성장한 요인 중 하나다.

그 부산영화제가 벼랑 끝에 섰다. 영화인들이 영화제의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집단 불참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지난 21일 기자회견을 통해 천명했다. 영화제는 그저 축제가 아니다. 영화산업의 토대다. 짧은 시간에 고도성장을 이룬 한국영화산업의 바탕에는 부산영화제가 있었다. 영화제를 흔들면 영화산업에도 균열이 인다. 아시아 영화 중심을 꿈꾸는 부산시가 영화제를 흔드는 주체라니 아이러니하다. 너무나, 지나치게도 창조적이다.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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