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2012년 댓글공작을 벌인 국군사이버사령부의 인력 충원과 관련해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고 진술했다. 검찰의 이명박 정부 국가정보원과 사이버사령부 수사 시작 이래 이 전 대통령의 직접 지시를 언급한 진술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그해 총선과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인력 증원을 지시한 것은 사이버사령부의 내밀한 여론 조작 양상을 알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해진 셈이다.
검찰은 최근 확보한 ‘사이버사령부 관련 BH(청와대) 협조 회의 결과’ 문건을 김 전 장관에게 보여 줘 이 전 대통령의 직접 지시 진술을 받아냈다. 2012년 3월 작성된 문건에는 “대통령께서 두 차례 지시하신 사항”이라고 돼 있다. 김 전 장관은 검찰에서 “이 전 대통령이 다른 부대 증원에는 관심이 없었는데 유독 사이버사령부 증원만 지시했다”며 “증원 계획을 한두 차례 보고했더니 대통령이 그렇게 하라고 승인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지시에 따라 사이버사령부는 대선을 앞둔 그해 7월 예년의 10배 가까운 군무원을 선발해 상당수를 사령부내 심리전단에 배치했다. 이 전 대통령이 불법적인 사이버사령부 활동에 관여한 증거로 이보다 명백한 게 있을 수 없다.
이 전 대통령이 받고 있는 혐의는 이 밖에도 여럿이다. 검찰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 지시로 민간인 댓글팀을 운영한 사건의 배후에 이 전 대통령이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문화ㆍ예술인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대기업을 압박해 보수단체를 지원하게 압력을 넣은 사건과 관련해서도 이 전 대통령 개입 의혹이 나오고 있다. 국정원 관련자들이 잇따라 구속돼 이 전 대통령의 턱밑까지 치고 올라간 상태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로만 봐도 청와대와 국정원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은 대통령의 지시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각에선 이 전 대통령의 검찰 조사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물론 전직 대통령이 또 한번 검찰의 포토라인에 서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하지만 전직 대통령일지라도 불법행위가 있으면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댓글 여론 조작과 문화예술계 탄압, 우익단체를 동원한 정치 공작은 하나같이 민주주의의 기초를 흔들고 시민의 기본권을 유린한 국기 문란 행위다. 보수ㆍ진보 문제로 접근할 사안이 아니다. 적폐를 뿌리째 뽑지 않으면 반드시 재발한다는 것은 지난 수십 년의 역사가 우리에게 생생하게 보여 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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