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징병제 논의가 뜨겁다. 여성징병을 요구하는 이들은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는 헌법 제 39조 1항을 근거로 내세운다. 이들은 대한민국헌법이 이중구조인 것을 놓쳤다. 2004년 10월 21일, 헌법재판소는 1485년 1월 1일에 최종 반포된 ‘경국대전’을 참조하여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을 무산시켰다. ‘경국대전’은 여성에게 군역을 부과하지 않았으니, 남성만 징병하는 현 제도는 관습 헌법에 부합한다. 이들의 진짜 문제는 시민권과 국방개념 모두를 ‘군필’로 수렴한다는 것이다. 병역 기피를 철저히 엄단했던 박정희 정권도 교육대학을 나온 교사에게는 징집을 면해 주었고, 지금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는 군대에 가지 않는다. 두 경우 모두 국방으로 인정되었고, 그들의 시민권은 의심되지 않았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여성징병제 논의의 시발은 헌법재판소가 군 가산점 제도를 위헌으로 결정한 1999년 12월 23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비역 남성들은 헌법소원을 제기한 주역이 페미니스트라고 알고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군 가산점 문제로 가장 먼저 헌법소원을 제기한 사람은 장애인 정강용 씨였다. 정부는 1961년부터 38년 동안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는 군필자에게 3~5%의 가산점을 주어 왔다. 이 때문에 장애인은 유일하게 공정한 경쟁이 가능한 공무원 임용 시험에서도 합격률이 낮았다. 정강용 씨 이후, 네 명의 여성과 세 명의 장애인이 청구인이 되어 군 가산점 위헌소송을 제기했다.
헌법재판소 판결문은 장애인 남성과 여성을 헌법소원 당사자로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언론이 이 판결에서 남녀 간의 대결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장애인의 절규는 사라져버렸고, 위헌판결에 대한 일부 남성들의 반발은 장애인에 대한 국가기관의 차별이 정당했다고 강변하는 셈이 되었다. 권인숙은 ‘대한민국은 군대다’(청년사, 2005년)에서 장애인은 누구나 공감하는 사회적 약자로 분노의 대상이 되기에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에 군 가산점 논란은 여성혐오를 키우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고 말한다.
여성징병에 찬성한다. 남북 휴전체제가 평화협정과 군축으로 이어지지 않는 한편 저출산이 계속된다면, 마땅히 여성징병에 대비해야 한다. 군사 장비의 경량화와 첨단화는 점점 여성징병에 최적화되어 간다. 문제는 한미 군사동맹의 분업 체계상 한국의 육군이 해군과 공군에 비해 기형적으로 비대하다는 것이다(육군8, 해군1, 공군1). 군 현대화에 걸맞은 비율 조정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 대부분의 여군은 육군이 되어야 한다. 하므로 여군사관학교설립 등의 여군 간부화 사업을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어느 여군 출신 인사는 이런 준비에 최소 10년은 걸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군대는 평등하지 않다. 군대도 빈부ㆍ지역ㆍ학벌ㆍ능력을 따진다는 점에서 사회와 같다. 사회에서의 남녀 불평등은 군대에서도 고스란히 재현될 것이다. 때문에 여군의 간부화는 여성징병에 앞서 준비되어야 한다. 미군과 이스라엘군 안에서 남성 상급자에 의한 하급 여군 성폭행 사건은 매년 벌어진다. 하나 더 강조할 것은 군대의 자원(무기ㆍ식량ㆍ피복)은 늘 한정되어 있고, 보급은 언제나 정예부대 우선이라는 사실이다. 막상 전쟁이 벌어지면 이 현상은 더욱 노골적이 되는데, 이때 여군은 ‘버리는 돌’이다. 보급은 여군보다 훨씬 쓸모 많은 ‘진짜 사나이’가 독차지하게 된다. 이래서 여군 장성이 있어야 하고, 국방부 장관은 남녀가 교대로 맡아야 한다.
오랜 인류 역사에서 남자는 여자와 동족과 국가를 지키는 것에서 자신의 본성과 정체성을 찾았다. 권인숙의 말을 빌리자면, 남자는 병역을 통해 남성성을 획득했고 여성을 지배하는 남성 권력의 원천도 병역에서 나왔다. 남성들의 여성징병제 청원운동은 자신의 팔루스(Palus: 남성의 상징적 권력)를 스스로 거세한다는 점에서 희비극적이다. 반면, 이 청원운동은 남성이나 여성의 본성 따위란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발전적이다. 이들은 남성과 여성이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사회ㆍ문화적 구성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장정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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