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스폰서 검사 삭제 문자 살리고
계좌 140만ㆍ통화 13만건 분석
조희팔 사기 피해액도 밝혀내
국내-국제 용어 달라
기준 통일이 과제
범죄수법이 날로 지능화되고 정교해지는 가운데 디지털 증거물을 복원ㆍ분석하는 디지털 포렌식 기법이 수사 과정에서 혁혁한 역할을 하고 있다. 전국 검찰청에 접수되는 사건의 상당수가 휴대폰이나 이메일, 폐쇄회로(CC)TV 분석, 유전자ㆍ지문 감정 등 과학수사를 거쳐 실체적 진실이 드러나고 있다.
지난달 27일 수사 무마 청탁 등 혐의로 구속된 김형준(46) 부장검사 사건에서 검찰은 모바일 포렌식 기법을 동원해 김 부장검사의 개인 휴대폰에서 삭제된 문자메시지 등을 복원했다. 이를 김 부장검사의 스폰서 사업가 김모씨가 저장해 둔 메시지와 비교한 결과 상당부분 일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포렌식팀 관계자는 “모바일 포렌식을 할 때 휴대폰 기기 별로 3가지 다른 방식을 적용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6월 북한 소행으로 추정되는 외교ㆍ안보 분야 인사 90여명의 이메일 계정 해킹 사건 수사에서는 사이버수사과의 악성코드 및 로그정보 분석 기법이 활용됐다. 사이버수사과는 이 사건 수사 당시 피싱 이메일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계정 60개에 사용된 11억9,000줄에 해당하는 대용량 로그와 웹소스를 분석해 피해자와 중국 선양에서 접속한 범인의 IP 68개를 특정해냈다.
조희팔 다단계 범죄 수익 은닉 사건의 피해액을 밝히는 데에도 포렌식 기법이 역할을 했다. 대구지검이 기소 당시까지 밝힌 피해액은 2조5,000억원대. 계좌분석 프로그램을 통해 계좌 140만여 건을 확인하고 이메일 1만5,000여건과 통화 약 13만건 등을 분석한 결과였다. 그러나 압수해놓은 하드디스크에서 삭제 유실된 파일 65기가바이트(GB)는 복구가 어려웠는데, 검찰은 여기에 추가 피해에 대한 단서가 들어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던 중, 지난 4월 과학수사부가 삭제된 데이터베이스를 복구하는 특허를 내고 일주일 만에 이 DB를 복구하는 데 성공했다. 앞서 확보해 둔 은행 거래내역 등 자료 1,800만건과 대조한 결과 95%가 일치해 추정만 하던 추가 피해규모를 확인할 수 있었고, 이에 따라 총 피해액을 5조715억여원으로 결론내렸다.
이 같은 컴퓨터 포렌식은 컴퓨터 하드에 대다수 증거물이 담겨있는 디지털 시대에 가장 자주 동원되는 과학수사 기법이다. 컴퓨터를 새로 가동해도 기존 기록이 지워지지 않도록 ‘쓰기 방지’ 장치를 하고, 하드디스크를 통째로 압수하기 어려운 경우 쌍둥이 하드디스크를 본뜨는 방식으로 증거자료를 확보한다. 대검 과학수사부(부장 김영대 검사장)에 따르면, 전국 검찰청에서 대검찰청에 분석 의뢰된 사건은 2010년 4만9,000여건에서 지난해 9만3,000여건으로 2배 넘게 증가했다.
그러나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은 있다. 단위나 용어와 같은 감정 기준이 국제 표준과 상이해 국가 간 협력 시 불편을 초래한다. 국내 검찰과 경찰,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사이에서도 기준이 조금씩 달라 국내 기준부터 통일해야 하는 실정이다.
김 검사장은 “과학수사는 과학적ㆍ객관적으로 진실을 발견할 뿐만 아니라 피의자에게 강요하지 않고 수사를 할 수 있어 인권 보호에 기여하는 두 개의 축이 될 수 있다”며 “문서감정과 심리분석, 화재현장 감식 등을 연구하고 발전시켜 우리나라 과학수사 기법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말했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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