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교동이며 경기도 포천 등지에 대피령이 내렸다는 뉴스를 듣자 오금이 저렸다. 밭일 마치고 점심을 들러 집에 가던 이들이 인근 초등학교 대피소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는 그 소식에 어째서 그처럼 쩔쩔맸을까. 바로 거기 강화도에 사는 화가 친구며, 지금도 한국전쟁 당시 눈 앞에서 떨어진 포탄 얘기를 하시며 진저리 치곤 하는 시아버님이며, 누가 이기나 한판 붙어보자고 방정맞게 막말 하던 얼굴이 두려움과 원망 한 덩어리로 회오리치고, 지난 해 유월 배 타고 찾아가 그림책 읽고 놀았던 연평초등학교 아이들까지 쑥 떠올랐다.
갑자기 날아온 포탄에 무너진 것은 가옥이나 건물만이 아니었다. 몇 해째 바닷가에도 내려갈 수 없이 온갖 금지에 둘러싸인 아이들도, 일상 뒤숭숭한 어른들도, 그 날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했던 상처에 온 삶을 시달리는 듯했다. 또 그런 일이 벌어질 참이라니! 바로 열흘 전 일인데, 까마득한 흉몽 같다. 이럴 때 ‘조개맨들’을 만나 한바탕 울음보를 터트린 것은 유익하고 유효했다.
조개맨들은 섬 사람들 삶과 함께 해온 조개, 그 껍데기가 쌓이고 쌓여 다져진 들판이다. 섬마을 어디에나 있을 법하지만, 강화군 교동면 대룡리 흔다리 서쪽에 있는 조개껍데기 들판을 지칭하는 고유명사이다. 주인공 아이 영재가 사는 집으로부터 걸어서 한 시간 거리지만, 영재에게는 이 조개맨들이 낙원이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개간해 온갖 맛난 참외를 심어 키워 내다파는 곳이고, 거길 향해 아빠하고 둘이 걷는 시간이 더없이 행복했던 곳이다. 여름이면 보라색 붓꽃이 그득히 피어나는 그 길에서 어느 날 영재가 감탄한다. “아빠, 붓꽃 정말 예쁘죠?” 그러자 아빠가 대답한다. “아니! 붓꽃보다 우리 영재가 백 배는 더 예쁜걸!”
꽃들에게 미안할 만큼 행복했던 그 낙원이 퍼렇고 뻘겋게 뭉개어졌다. 그토록 살뜰히 영재를 사랑했던 아빠가 사라졌다. 영재는 아빠 없이 조개맨들에 가본다. ‘부시미 산도, 조개껍데기도 그대로인데’라고, 종결어미 없이 말줄임표 없이 마감한 문장은 더는 목이 메어 나오지 않는 영재의 목소리 그대로이다. 어린 영재의 심상을 강렬한 터치의 굵고 거친 색감으로 펼쳐 보인 조은영은 첫 그림책 ‘달려 토토’로 세계적인 그림책 상 BIB-브라티슬라바 일러스트 비엔날레 그랑프리 수상작가, 어린 시절에 잃은 아버지를 평생 그리워한 시어머님 이야기를 생생하고도 속 깊은 글로 재현한 신혜은은 그림책 심리학자이다.
이상희ㆍ시인 (그림책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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