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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원 기자

등록 : 2017.02.24 20:00
수정 : 2017.02.24 20:40

[특파원칼럼] 잇따른 북한변수에 예민해진 일본

등록 : 2017.02.24 20:00
수정 : 2017.02.24 20:40

‘비운의 北황태자’ 김정남.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이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지난 13일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됐다. 사진은 김정남이 지난 2001년 5월4일 일본 나리타 공항에서 베이징행 여객기에 탑승하기 전 카메라에 포착된 모습. [AP=연합뉴스 자료사진]

김정남 암살 사건으로 일본사회가 경악하며 북한 정권의 잔혹성에 치를 떨고 있다. 사건 초기부터 일본 방송에선 북한공작원의 독침 공격이나 각종 살인무기들이 실감나게 소개돼 공포분위기를 자극했다.

과거 한국 정보기관을 통해 드러난 독극물이 묻은 볼펜형 독침, 뚜껑을 돌리면 발사되는 만년필형 독총, 인명살상 탄두가 발사되는 손전등이 등장하고 여성 공작원들의 암살훈련 장면이 김정남의 생전 모습과 함께 연일 방송을 탔다.

일본 정치권은 크게 들썩였다. 14일 저녁 처음으로 김정남 피살 소식이 전해지자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총리는 “보도된 내용대로라면 너무 무서운 일이다. 북한에 여러 변화가 있는게 아니냐”고 반응했고, 자민당 내에선 2020년 도쿄올림픽 때 북한으로부터 무슨 테러를 당할지 모른다고 흥분했다. 안그래도 북한에 대한 공포감이 큰 일본에선 이번 사건으로 이제 백주대낮에 북한에서 민간인을 납치할 수도 있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김정남 사건을 흥미위주로 접근하는 모습도 없지 않았다. 베일에 쌓인 북한왕조에 대한 대중의 호기심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김정남은 이미 1990년대 도쿄 아카사카(赤坂)의 고급클럽에 출몰했고 그와 사귄 한국인 여성을 한국 정부가 찾아내 면담했다고 한다. 그가 가짜여권으로 일본에 올 때마다 일본 공안당국 수십명이 호텔 옆방을 빌려 접촉상대를 조사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이번 사태가 나자 일본인납치피해자 가족회의는 즉각 총리관저를 방문해 “납치자 문제 해결에 너무 시간이 걸린다. 아버지, 어머니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할지 모른다”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에게 호소했다. 피해자들의 안타까움과는 별도로 눈길을 끄는 대목은 우익세력이 납치자 문제에 미국을 끌어들인다는 점이다. 극우매체는 미일 공동으로 힘을 합쳐 북한에 있는 납치자를 전원 구출하자는 구호를 꺼내기 시작했다. 2004년 중국에서 실종된 미국인 대학생 데이비스 스네든이 북한공작원에게 납치됐다는 정보와 관련해 미국도 피해당사국임을 강조하고 있다. 미일동맹 강화의 호재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함께 분노하길 호소하는 것이다.

특히 일본은 김정남 사태가 북중관계에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중국공산당 실세의 자제그룹에서 ‘뚱보형’으로 불리며 인기를 독차지했다거나, 그를 뒷바라지한 당 간부들이 실각했다며 중국의 행보를 정확히 예측하는데 몰두하고 있다. 성공적인 미일정상회담을 했다지만 노련한 장사꾼인 트럼프가 실리를 추구한다면 일본보다 중국과의 협력에 매력을 느낄 것이란 불안감이 해소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겐 첫 미일정상회담과 그 한복판에 터져나온 북한 미사일 발사, 곧이은 김정남 암살까지 전부 민감하게 연결된 사안이다. 지난 12일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에서 있었던 미일 정상간 한밤의 만찬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북한 소식이 전달되자 일순간 웃음소리가 사라지고 안보비서관들이 뛰어다녔으며 트럼프와 아베는 보고자료를 손전등 불빛에 비추며 긴박하게 읽고 있었다.

조공외교란 소리까지 들어가며 물불 안가리고 뛰는 일본, 북한도발에 한밤중 긴급기자회견을 열며 “미국은 위대한 동맹국 일본과 100% 함께 할 것”이라고 말한 트럼프. 이들이 한반도정세에 머리를 맞대며 논의할 때 ‘한국’은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트럼프는 23일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도 북한미사일 위협을 받는 나라로 일본만 거명했다. 미일간 미중간 강대국들은 긴박하게 돌아가는 한반도를 놓고 자신들의 이익을 계산하는데 분주하다. 최순실 농단의 주체인 박근혜 정부는 국정을 포기했고 정치권은 대선판을 앞두고 내부의 적과 싸우느라 다른데 신경 쓸 여력이 없다. 우리 운명이 걸린 세계정세에 넋놓고 있던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 구조는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도쿄=박석원 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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