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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현장실습 개선 방안이 빠뜨린 것

입력
2017.12.03 13:19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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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제주도의 한 특성화고 졸업반 학생이 실습 중 사고로 사망한 일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그 학생은 9월부터 조기취업 형태의 현장실습으로 매일 11-12시간씩 근무하고 작업장에서 음료 포장 기계를 홀로 맡아 작업하다가 사고를 당하였다고 한다. 많은 국민이 그 학생이 당했을 고통과 친구들이 겪을 아픔을 생각하며 함께 슬퍼했다. 이후 현장실습 제도의 문제점에 관한 학생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정부는 1일 사건 대응 방안으로 내년부터 ‘조기취업 형태의 현장실습’을 전면 폐지하고 ‘학습 중심 현장실습’만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그 발표에 따르면, 이 방안이 성공적으로 이행될 수 있도록 관계부처가 협력하여 우수 현장실습 기업 후보군을 학교에 제공하고, 기업에 다양한 행정ㆍ재정적 인센티브를 부여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리고 직업계고에 만연한 취업률 성과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취업률 중심의 학교 평가 및 예산 체계를 개선할 예정이라고 한다.

약 한 달 동안 진행된 직업계고 현장실습에 관한 논의가 개별 교사 또는 학교에 대한 책임을 문책하거나 강화하는 방식으로 끝나지 않고, 제도 자체를 개선하는 결론으로 이어진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11월 22일 한국일보 사설이 적절히 지적한 바와 같이, 정부가 양적 취업률을 중요한 평가 지표로 삼는 상황에서 개별 학교로서는 조기취업 형태의 현장실습은 점수를 높일 수 있는 좋은 도구였고, 기업은 이 틈을 파고들어 실습생들을 저임금의 기피 업무나 위험한 일에 투입한 것이다. 이 점에서 현장실습에서 발생한 비극적 사고의 책임을 교사나 학교에 지우는 건 적절하지 않다.

지금 밝혀진 또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현장실습생들의 고통과 관련해서 스스로에게 책임과 잘못이 있다고 여겨 힘들어 하는 직업계고 교사들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그 일들과 관련해서 교사들을 무작정 비난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왜냐하면 위에서 말한 직업계고의 현실 속에서 교사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평범한 교사로서는 취업이 학생들의 미래를 위한 좋은 선택이라고 여겼을 가능성도 크다.

교사를 좋은 직업으로 여기고 많은 아이들의 꿈이 교사인 이유는 근무조건 때문만은 아니다. 무언가를 가르치는 행위 자체가 본질적으로 그 일을 하는 사람 자신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교사는 누군가가 잘 되기를 바라는 직업이다. 수업 중에 떠드는 학생을 보며 화를 내곤 하지만, 길을 걷거나 가족들과 대화를 하다가 문득문득 학생들을 떠올리며 그들이 행복하기를 바라곤 한다. 누군가의 행복을 기원하는 기회를 가진다는 건 직업으로서 교사의 가장 큰 장점이다. 이는 과목이나 학교의 성격과 무관하다. 이 점에서 우리는 직업계고 교사들의 선의를 섣불리 의심하거나 그들을 비난하는 건 삼가야 한다.

그와 달리, 저임금으로 현장실습생의 노동을 착취한 기업에 대해서는 엄격한 제재가 필요하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노동은 괴로움이 아니라 개인의 인격 실현을 위한 필수적인 삶의 요소라고 가르친다. 청소년들 역시 그 말을 믿고 노동시장에 뛰어든다. 그런데 학생들의 증언에서 드러나듯이 일부 기업은 이런 사회와 청소년들의 신뢰를 저버리고 스스로의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지 않았다. 이러한 불량 기업에 대해서는 근로감독을 통해 위법행위를 적발하고 제재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저임금이란 손쉬운 수단에 의존하여 이윤을 얻고 청소년의 노동권을 침해하는 기업을 제재하지 않으면, 혁신을 도모하고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기업을 보호한다는 정책은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이 점에서 1일 정부 대책에서 근로감독 등 불량 기업에 대한 대책이 빠진 것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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